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 역사를 반드시 다시 살게 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원래는 그만큼 매사에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며 비판적 발전을 이뤄나가야 한다는 뜻인데, 실제로는 그냥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전달하는 한탄조의 상황에서 인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이미 겪은 중요한 역사적 교훈 또는 매듭짓지 못한 역사적 과제들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려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 때 문제가 되었던 모습들이 다시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반복되는 인종전쟁까지 가지 않더라도, 당장 오늘날 한국사회만 보더라도 토건만능 정책성향이든 특정지역에 대한 홍어 운운하는 유사 인종차별이든 반공 공안무드든 사회가 과거로 돌아갔다며 걱정하는 모습들이 드물지 않다. 따라서 기억을 되새기며 그것을 과거로 박제하기보다는 현재의 생활에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직면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해진다. 특히 아픈 기억일수록 더욱 그렇다.
5·18 광주항쟁의 당사자와 후손들이 벌이는 스릴러물인 강풀의 ‘26년’이 화제 속에 연재된지도 벌써 4년이 됐다. 중간에 투자가 여의치 않아 중단되기는 했으나 원래 영화화도 추진되었던 바 있는데, 영화 개봉 시점에 맞추어 ‘29년’ 이 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80년 광주의 모습을 재현해 보여주고자 한 ‘화려한 휴가’ 같은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은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고 역사를 이야기한다. 단순히 그 순간 자체가 아니라 그 유산이 지금 어떻게 남아있는가를 보여준다.
당시 받은 충격과 손실, 절망, 죄책감이 트라우마가 되어 숨죽어 지내는 이, 저항하는 이, 그들의 아이들, 오히려 더욱 권력의 수하로 충성하는 이 등이 살아가는 모습이 이야기의 주축을 이룬다. 원래 평범했던 시민들이, 응어리의 구심점이 되는 그 분을 암살하기 위해 나서는 스릴러 줄거리가 흐르기는 하지만, 작품의 진정한 매력은 각각의 삶에 있다.
역사를 지니고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 그 속에 담긴 기억과 그것에 짓눌리거나 극복하는 사람들의 힘(혹은 그것을 바라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바로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어줬다. 그런 모습이야말로 하루하루 역사를 살아가는 우리 실제 평범한 사회적 삶의 과정에 대한 직면이다. 올해 이 작품을 거론하는 이 지면이라면 아마도 26년이 아니라 ‘30년’이라고 불러야 온당하겠다 싶을 정도다.
물론 세상은 복잡하고 사건은 넘쳐나기 마련이라서, 과거는 적당히 잊어가면서 사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만큼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는 역사 또한 버리고 살아간다는 점 정도는 잊지 않는 것이 좋다. 아픈 기억이라면, 특히 내 무지 또는 무관심 속에 내 옆의 남이 아팠던 기억이라면 더욱 적극적으로 잊어두고 싶어진다.
하지만 딱 잊어버리는 그만큼씩, 오늘 이곳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동력을 잃는다는 정도는 기억해두는 편이 바람직하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모든 것을 한꺼번에 극복하며 고치는 것은 성긴 사회적 기억력 덕분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만큼씩만 서서히 고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왕이면 더 집요하게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들만큼은 약간씩 더 잘 기억해두는 지혜가 절실하다.
김낙호 만화연구가 capcolds@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