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라던 비아냥이 전세계 감탄사 `Wow!`로

`삼류`라던 비아냥이 전세계 감탄사 `Wow!`로

#1. 지난해 일본에서 개최된 PCB 전문 전시회인 ‘JPCA SHOW 2009’에 참여한 이녹스는 경쟁사들의 방문으로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경쟁사들이 급부상한 이녹스의 경쟁력을 조금이라도 파악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이녹스 부스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박정진 이녹스 상무는 “예전에는 거의 삼류기업 취급을 하던 일본경쟁 기업들은 이제는 극도의 경계를 보이는 반면, 원재료 공급업체들은 이녹스를 최고 협력 기업으로 치켜세우고 있다”며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2. 능동형(AM) 발광다이오드(OLED) 시장 점유율 90%을 장악중인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는 물량을 공급해달라는 고객들의 읍소 때문에 골머리를 싸맬 정도다. 공급할 물량은 제한적인데 공급해달라는 기업들이 계속 증가하면서 영업팀은 고객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하느라 지칠 지경이다.

 국내 부품·소재 업체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면서 전 세계 업체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고 있는 애플 아이패드 내부는 사실상 한국부품이 차지했다. LG디스플레이의 LCD패널, 삼성전자의 플래시메모리, 삼성전기의 적층세라믹콘덴서, 아모텍의 배리스터 등이 채택돼 일부 외신에서는 ‘한국 부품의 승리’라고까지 언급할 정도다.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는 애플로부터 그만큼 높은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국내 부품· 소재 제품이 세계적으로 발돋움한 것은 불과 수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반도체와 LCD는 1990년대 후반 이후 확실한 우리나라 전략 품목으로 자리잡았지만 일반 부품이나 소재는 여전히 이류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세계적인 일류기업으로 발돋음하고 그들로부터 혹독한 검증 및 훈련을 받은 국내 부품·소재 기업들은 이제 날개를 달고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유형도 다양하다. 삼성전기의 반도체용 PCB, LG이노텍의 TV용 튜너, 서울반도체 LED 등이 오랜 세월을 거쳐 고생끝에 세계 1위에 오른 고진감래형 프리미엄 부품인 반면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의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 OLED), 아이앤씨테크놀로지의 DMB통합칩 등은 사실상 독주하는 절대 우위형 부품이다. 작지만 강한 강소기업들도 속속 탄생하고 있다. 정전기 방지용 부품인 세계 배리스터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는 아모텍, 연성PCB의 소재인 연성동박적층판(FCCL) 분야에서 세계 2위권에 오른 이녹스, 세계 냉장고 얼음분쇄기 모터 시장을 석권하는 에스피지 등은 그 기업들이다.

 국내 기업이 세계 1, 2위를 차지하는 LCD 분야에는 고속 성장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3M의 프리즘시트 대체 제품을 출시한 미래나노텍, 편광판 분야에 새 강자로 주목받은 에이스디지텍, LCD 드라이브 IC 전문업체인 실리콘웍스, LCD 광원인 CCFL(냉음극형광램프)을 생산하는 우리이티아이 등은 해마다 고속 성장을 거듭, 세계 1, 2위 업체로 발돋음했다. 반도체의 원조인 페어차일드의 한국법인인 페어차일드코리아, 지난 1977년 세계 4번째로 폴리에틸렌수지(PET) 필름 독자개발에 성공한 SKC 등은 전통의 명가로 국내 부품·소재 인력의 사관학교로 불리운다.

 국산화에 초점을 맞췄던 국내 부품·소재 기업들은 이제 세계 최초의 제품까지 출시하는 등 보다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크루셜텍은 휴대폰이나 모바일 기기에서 마우스 기능을 수행하는 광학트랙패드(OTP)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블랙베리로 유명한 리서치인모션(RIM)과 삼성전자와 LG전자·노키아·모토로라·HTC 등이 모두 이 회사 제품을 사용한다. 근거리 무선통신 규격인 지그비칩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기업도 국내 기업인 레이디오펄스다.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국내 부품·소재 기업이 강해지면서 이 분야가 우리나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지난 4월 부품·소재 무역 흑자는 64억1000만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론 반도체·LCD가 여전히 주력 수출 품목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품목이 다양화되면서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다만 국내 부품·소재 기업이 급부상하면서 해외 선발업체들의 특허 공세가 강화되는 등 견제도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 극복과제다. 삼성전자, LG전자가 소니, 마쓰시타 등을 TV에서 이길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반도체·LCD 역시 국내 기업은 ‘과연 한국 기업이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세트에서 거둔 승리의 역사가 이제 부품·소재 분야로 파급되고 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