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번지는 유럽 재정위기 ◆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일본 국채 신용등급을 낮출 것이라는 소문이 불거지는 등 유럽발 금융불안이 아시아로 옮겨 붙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피치 본사가 17일 "일본에 부여하고 있는 신용등급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지만 일본은 물론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각국은 유럽발 불똥이 튀지 않을까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기획재정부는 아시아 경제대국인 일본의 신용등급이 내려갈 경우 한국에도 그 여파가 미칠지 우려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피치의 일본 신용등급 인하설은 남유럽발 금융위기가 재정위험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로 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일본 등급이 하락한다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3.8%로 양호한 편이지만 일본 신용등급이 하락한다면 한국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피치는 2005년 10월 이후 한국에 대한 국채 및 국가신용등급을 `A+`로 한 뒤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본의 등급 하락이 큰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재정건전성 재평가라는 잣대가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도 한국의 경제력은 일본과의 차별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비교적 견실한 성장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국가신용등급을 `A1`으로 한 단계 올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주 발간한 재정감시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GDP 대비 국가 부채비율이 올해 227.1%를 기록한 뒤 2015년 250%대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미국(84.8%)이나 영국(68.7%)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유럽발 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101%) 보다도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일본은 특히 올해도 경기부양용으로 44조엔 규모의 국채 발행을 예고해 놓고 있어 정부 기대대로 세수 수입이 늘어나지 않을 경우 내년 초에는 사상 처음으로 국채 잔고가 1000조엔대에 육박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피치는 지난달 일본의 국채 신용등급(AA-)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S&P는 올해 초 일본의 신용등급(AA)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이 오는 2015년 전후 경상수지 적자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해외상품 수입 확대와 저축률 하락에 따른 국채 해외 매각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해외 배당금이나 이자 등을 반영하는 소득수지가 빠른 속도로 악화되면서 일본이 2010년대 중반기 경상수지 적자 전환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7일 보도했다.
특히 일본의 가계 저축률은 버블 붕괴 이전인 1980년대 초반 20%대를 기록하며 일본 경제를 떠받쳤지만 2007년 역대 최저 수준인 1.7%대까지 하락하는 등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의 경상수지는 2009년 전년 대비 26.5% 증가한 15조6500억엔을 기록했지만 25조엔대에 육박했던 2007년보다는 크게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다 잠재성장률이 1%대 미만으로 예상되고 복지예산은 가파르게 늘어나는 재정 악화 구조가 정착된 데다 저축률 하락과 고령화 추세로 금융회사들의 국채 매입도 수년 이내에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매일경제 도쿄 = 채수환 특파원 / 서울 = 김병호 기자 / 정동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