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재무약정 체결에 반발하며 주채권은행 교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재무약정을 둘러싸고 대기업과 주거래은행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로 비화하고 있다.
현대그룹이 `강수`를 들고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외환은행에 대한 현대그룹 채무액이 1500억원 내외 수준이기 때문에 충분히 변제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환은행은 현대의 이 같은 입장에 유감을 표명했다.
현대그룹은 지난달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대상에 검토된다는 소식이 나올 때부터 강하게 부인하면서 반발해 왔다.
재무약정에 들어가면 기업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외국 물량 수주가 어려워지고 차입금리도 올라가는 단점이 훨씬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유동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신조선박 건조자금 지출이 국내 다른 대형 선사보다도 적다고 주장한다. 그룹 관계자는 "전문가들은 우리 그룹 부채비율을 `건강한 수준`이라고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상선 부채는 지난해 말 6조1267억원에서 지난 3월 말 6조3811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당기손실(-8375억원)로 인해 부채비율도 지난해 말 276%에서 3월 말에는 319%로 크게 올랐다. 현대상선은 3월 말 현재 장단기 차입금 5493억원, 사채 2조827억원 등을 지니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또 "재무약정 선정 과정에서도 비밀 유지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평가 과정에서 주요 언론에 보도되는 등 주거래은행이 의무를 게을리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외환은행은 재무약정 체결 사실을 공식적으로 공개한 적도 없고 외환은행이 재무약정 체결을 강하게 주장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외환은행은 재무약정 체결 시 재무지표평가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최근 정부나 금융당국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 이런 분위기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다른 채권은행들이 주채권은행을 잘 설득하면 재무약정 체결 대상에서 빠질 수 있을 것처럼 `립서비스`를 한 것 같다"며 "주채권은행 입장에서 채권액이 큰 거래기업이 재무약정을 맺어서 좋을 게 뭐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현대그룹이 해운업에 대한 이해 부족을 주장한 데 대해서도 외환은행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현대그룹 주장은 주력 기업이 흑자가 났고 앞으로 경기도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니 봐달라는 것인데, 그런 논리라면 재무약정을 체결할 기업이 몇이나 되겠냐"고 지적했다.
현대그룹이 예고한 것처럼 실제 주채권은행을 바꿀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금융권 관계자는 "채무를 한 번에 다 갚고 주채권은행을 바꿔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고, 바꾼다고 약정 체결 대상에서 빠질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도 "이런 사태를 겪으면 다른 은행들에도 현대그룹에 대한 신인도를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외환은행보다는 산업은행이 여신액이 많지만 현대그룹 측 결정에 따라 외환은행이 주채권은행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현대그룹이 향후 산업은행으로 주채권은행을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매일경제 김정욱 기자 / 손일선 기자 / 임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