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운기자의 백투더퓨처] <11> 25세 `린드버그` 단독비행으로 대서양 횡단

[이수운기자의 백투더퓨처] <11> 25세 `린드버그` 단독비행으로 대서양 횡단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 앤드리아. 뉴욕의 유명 패션잡지 ‘런웨이’의 악마 편집장 미란다의 비서인 그녀는 파리 출장길에서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란 깨달음을 얻는다. 범죄 스릴러 ‘테이큰’의 전직 비밀정보요원 브라이언은 딸을 구하기 위해 미국에서 파리까지 단숨에 날아간다. 뉴욕과 파리. 8시간의 비행시간, 80만원 안팎의 항공료만 있으면 오갈 수 있는 이 두 도시를 이처럼 쉽게 잇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우편비행사 출신의 오거스터스 린드버그다.

1927년 5월 21일, 당시 스물 다섯의 린드버그는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라는 말로 무착륙 대서양 횡단 성공을 자축했다. 승무원과 낙하산 없이 최소한의 식량과 나침반만으로 버틴 33시간 32분.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미국 항공 산업과 글로벌 비즈니스는 꿈꾸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물론 린드버그의 도전이 처음부터 이 같은 일을 예견하고 시작된 것은 아니다. 1915년 호텔 부호인 레이먼드 오티그는 대서양 무착륙 횡단에 2만5000달러의 상금을 내걸었고 린드버그 이전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도전했다. 대부분은 이 도전에 포기하거나 실패했고 이 중 6명이 목숨을 잃었다. 린드버그가 최대한의 연료를 싣기 위해 승무원이나 낙하산, 무전기도 없이, 최소한의 식량과 나침반, 선회계에만 의존해 비행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롱아일랜드에서 출발해 추위와 졸음, 극한의 외로움을 견뎌내며 5815km를 날아 파리 르부르제 비행지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영웅이었다. 그의 성공은 린드버그 개인에게는 상금과 ‘도전의 상징’이라는 영예를 안겨줬을 뿐만 아니라, 미국 항공 산업사의 새 장을 열어 줬다.

우선, 잇단 사고로 ‘비행기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안전하고 빠른 이동수단으로 비행기를 보여줬다. 이 덕분에 1년 만에 전 세계 항공기 대수는 4배가 늘었고, 승객수는 30배나 증가했다.

육로와 해로에만 의지했던 물류 운송에도 하늘 길을 열어줬고, 이것은 미국이 세계경제에 중심에 서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정부 주도의 군사 개발 목적으로만 머무른 비행기 개발이 민간으로 이양되면서 한층 다양한 비행기가 출시됐고, 항공산업의 발전을 촉진했다.

한 젊은 청년의 목숨을 건 도전이 이뤄낸 경제적 파급력은 이토록 깊고 컸다. 린드버그와 그가 조종한 비행기 ‘센트루이스 정신(Spirit of St. Louis)’은 벤처정신, 도전정신.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서 한 번쯤은 되새김질 해볼만한 요소일 것이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