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는 전자산업의 가치사슬에서 콘텐츠 생성이라는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박상진 삼성전자 디지털이미징사업부 사장은 지난 14일 수원사업장으로 찾아간 기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광학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전자산업은 콘텐츠를 생성하고 처리, 저장, 전달, 재생하는 가치사슬(value chain)을 형성하는데, 광학기술이 이 가치사슬의 첫 단계를 맡는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소비자가 직접 카메라로 찍어 제작한 콘텐츠를 블로그 등에 올리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타인과 이를 공유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얘기했다. 그런 만큼 카메라와 캠코더를 만드는 디지털이미징사업부의 사업영역은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박 사장이 디지털카메라(디카) 사업을 맡은 것은 2008년 5월 말. 당시 삼성전자 동남아총괄(부사장)을 맡은 그는 베이징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성화 봉송 주자로 선발돼 상하이에 출장 중이었는데 본사로부터 인사발령 내용을 통보받았다.
박 사장은 "솔직히 착잡한 심정이었다. 당시 디카 사업은 삼성테크윈이 삼성전자와 협업하고 있었는데 상황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사원들의 심기일전부터 촉구하는 의미에서 `빛을 다루어 꿈을 실현시키자(Touch the light, Realize the dream)`는 비전을 만들고 개혁에 나섰다. 해외에 제품을 파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딜러를 통해 현지 소비자의 반응까지 꼼꼼히 살펴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효과는 2009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하고 디자인을 개선하자 디카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사원들도 자신감을 갖게 돼 사업에 선순환이 일어났다.
작년 8월에는 카메라 뒷면은 물론 앞면에도 1.5인치 LCD를 장착한 `듀얼 LCD 카메라`라는 혁신 제품을 내놓았다. 셀프 촬영은 물론 유아나 가족, 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는 용도로 각광받으며 작년에만 100만대가 팔렸다. 휴대폰으로 치자면 무려 1000만대 수준으로 팔린 히트상품이었다. 이는 디카시장 규모가 휴대폰의 10분의 1인 점을 고려한 수치다.
이 제품의 탄생 배경을 물었더니 `협업`이라고 답했다.
"미국 현지에서 소비자행동을 분석해 제품 컨셉트를 발굴하는 PIT(Product Innovation Team)에서 내놓은 아이템 중에서 선택했다. 디카의 화소와 줌 배율, 사용자 편의성 등을 염두에 두고 고심한 끝에 듀얼 LCD카메라 아이디어를 택했다."
박 사장은 지난달에는 `하이브리드 디카(모델명 NX10)`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선보였다. 렌즈교환식인 디지털 일안 반사식(DSLR) 카메라에서 펜타프리즘과 거울을 없앰으로써 같은 화질을 구현하면서도 크기와 무게를 줄인 제품이다. 통상 `미러리스(Mirror-less)`로 불린다.
DSLR와 같은 화질을 구현한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아 물었다. 그러자 박 사장은 "화질은 센서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NX10에 장착된 APS-C 센서는 기존 하이브리드 디카에서 채용한 센서보다 사이즈가 30% 더 커서 화질의 선명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NX10의 장점을 얘기할 때는 눈에서 빛이 났다.
"DSLR에서 주로 찍는 12가지 장면을 집어넣어 소비자가 쉽게 촬영할 수 있다. 거울을 없애 동영상 찍기에는 DSLR보다 훨씬 편하다."
NX10이 출시된 지 2개월이 안됐지만 한국의 하이브리드 디카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NX10 때문에 국내 DSLR 판매가 15% 줄어들었다고 했다. 매달 5000대를 파는데 가정의 달인 이번 달에는 7000대가 팔릴 것으로 기대했다.
삼성의 올해 디카 판매 목표를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콤팩트 디카를 1800만대 팔아 점유율을 글로벌 2등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100만~120만대인 글로벌 하이브리드 디카 시장에서는 NX10을 30만대 팔겠다."
박 사장에게는 삼성 내에서 두 가지 수식어가 붙어다닌다. 16년간 해외에서 근무해 `해외통`, 초대 글로벌마케팅실장을 역임해 `마케팅 전문가`라는 별칭이다. 오랜 해외근무 경험이 지금 업무에 어떻게 도움되는지를 물었다.
"삼성 전체 디카의 90%가 해외시장에서 팔린다. 오랫동안 해외 영업현장을 뛴 만큼 글로벌 소비자의 니즈를 잘 알고 현지에서 마케팅하는 방법을 몸으로 체득했다."
30년도 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내 사업을 한다는 주인의식을 갖고 업무에 임하면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던 문제도 어느 순간 해결책이 떠오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꾸준하게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잦은 해외 출장과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내는 건강 유지 비결을 물었다.
"집중해서 일한다. 직장에서 일하거나 고민할 때는 치열하게 하지만 일을 집으로 가져가지 않으며 아침에 조깅이나 걷기 등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박 사장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목표를 100점이라고 했을 때 지금의 디지털이미징 사업에 몇 점을 주겠느냐고 질문했다. 주저하지 않고 "60점 정도"라고 답했다.
너무 낮은 점수를 매겼다는 생각이 들어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전 세계 카메라 업계 거인들이 만든 경쟁규칙을 따라서는 승산이 없다. 게임의 룰 자체를 바꿀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게임의 룰을 바꾸기 위해 뭘 준비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급변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솔루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앞으로 데이터의 무선 공유가 중요해지는 만큼 이 부분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고 답했다. 표현은 안 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still hungry)`고 씌어 있었다.
■ 박 사장은…
△1953년 경기 안성 출생 △경복고, 서울대 무역학과 △1977년 삼성전자 입사 △1996년 삼성전자 SECOSA(구주총괄) 법인장 △1999년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실 실장(상무) △2001년 삼성전자 무선전략마케팅팀장(전무) △2003년 동남아총괄 부사장 △2008년 삼성테크윈 디지털카메라사업부장(부사장) △2009년 삼성디지털이미징 대표이사 사장 △2010년 삼성전자 디지털이미징사업부 사장
[수원 = 김대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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