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ll Champ / ① 탑엔지니어링 ◆
김원남 탑엔지니어링 대표(왼쪽)가 경기도 파주 공장에서 LCD 액정주입장치인 "디스펜서" 실린더 부품을 뽑아들고 연구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성중 기자]
스몰챔프(Small Champ)는 `작지만 강한 강소기업`을 뜻하는, 규모는 작지만 뛰어난 기술력으로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이다. 세상을 선도하는 기술이나 신제품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가까이는 MP3, 멀리는 라디오가 그랬다. 이들 중소기업이야말로 헤르만 지몬이 말하는 `히든챔피언`이다. 매일경제신문은 작지만 강한 `스몰챔프`를 찾아내 그들이 1등 기술, 1등 제품을 어떻게 개발했는지, 그 과정의 숱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냈는지 분석해 시리즈로 소개한다.
가로 6m, 세로 5m, 높이 6m에 달하는 거대한 장비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공장 내 이 기계를 둘러싼 사람들은 해당 장비가 LCD 패널 안에 액정을 제대로 주입하는지 꼼꼼히 점검하고 있었다.
`디스펜서`라고 불리는 이 기계는 LCD 패널 생산에 없어선 안 될 핵심장비다. 이 디스펜서 분야에서 당당히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 `스몰 챔프`가 있다. 1993년 경북 구미에 설립된 탑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다. 경북 김천과 함께 2005년 경기도 파주에도 공장을 지은 탑엔지니어링은 현재 세계 디스펜서 시장 60%를 점유하며 국내 LG디스플레이와 대만 AU옵토트로닉스(AUO)ㆍ치메이옵토일렉트로닉스(CMO) 등 글로벌 LCD 패널 생산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탑엔지니어링 파주 공장에서 만난 김원남 대표(50)는 "창업 후 LCD 반도체 자동화 장비 생산만 10년을 이어왔지만 더욱 기술력 높은 장비 제조에 눈을 돌려야 진정한 챔피언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보고 디스펜서라는 LCD 공정 핵심장비 생산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회사가 디스펜서 개발 6년 만에 해당 분야 세계 1위를 차지한 이유는 따로 있다. 단기간에 연구역량을 집중한 최고경영자(CEO) 의지와 이를 따라준 사내 연구진 노력이 그것이다.
탑엔지니어링이 디스펜서 개발에 뛰어든 것은 2002년. 김 대표는 그해 3월 구미 본사에서 일하던 자사 연구인력 50여 명 가운데 핵심 인재 15명으로 팀을 꾸려 이들을 인근 김천 공장으로 파견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사용되던 디스펜서는 대부분 일본 히타치가 제조한 분사 방식 장비에 의존하고 있었다. 히타치는 LCD에 삼투압 방식으로 액정을 밀어넣는 기존 방식 대신 그러한 분사 방법을 새로 고안해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히타치의 액정주입 장비는 피스톤으로 주입 구멍을 제어하기 때문에 분사되는 액정 용량이 일정하지 않은 문제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 액정을 소규모 펌프를 사용해 정밀하게 떨어뜨리기로 했습니다."
김천 공장에 `갇힌` 15명의 연구인력이 7개월을 고생한 끝에 드디어 한국산 LCD 액정주입 장비 디스펜서가 처음으로 탄생했다. 대기업 LG디스플레이에 납품돼 성능 테스트를 거친 이 장비는 조금씩 그 기술의 우수성이 외국에도 알려지면서 판로에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양산 후 6년 만인 2008년 탑엔지니어링의 디스펜서는 한국과 대만이라는 세계 양대 LCD 패널 시장 내 대기업에 공급되면서 시장점유율이 60%까지 치고 올라갔다. 스승처럼 여기던 히타치를 완벽히 제친 순간이었다.
이 회사는 2008년 말 LCD 유리기판을 정밀하게 잘라낼 수 있는 글라스커팅시스템(GCS)을 개발했고 지난해 초에는 LCD 유리기판 중 하나인 초박막트랜지스터LCD(TFT-LCD) 불량 유무를 측정할 수 있는 어레이테스터 장비도 내놨다. 크기가 디스펜서와 유사할 만큼 대형 장비인 이들 기계 역시 디스펜서와 마찬가지로 이전까지는 모두 일본이나 미국에서 전량 수입해오던 제품이었다.
김 대표는 "기존 국내 업체가 뛰어든 레드오션 시장은 어느 순간부터 쳐다보지도 않았다"며 "뭐든지 국산화에 성공할 수 있는 아이템에 주목했고 그러한 블루오션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국산 1호 제품만 생산한 결과 탑엔지니어링 위상을 드높일 수 있었다"고 역설했다.
김 대표는 "반도체와 LCD 장비에서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발광다이오드(LED) 장비 생산도 올해부터 나서기로 했다"며 "몇몇 자회사를 통해서는 탄소나노튜브나 리튬이온전지 보호회로 등 고부가가치 기술장비 제조에도 뛰어든 상태"라고 말했다. 반도체 장비 섭렵과 LCD 장비 국산화로 명성을 알린 탑엔지니어링은 이제 10년, 아니 20년 뒤를 내다보고 그러한 신성장동력 육성에 주목하고 있다. 작지만 강한 세계 1위를 계속 누리기 위해서다.
■ 용어설명
디스펜서 = LCD 패널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2장의 LCD 유리기판 사이에 빛을 구현할 액정을 넣어야 한다. 이 액정 주입 역할을 하는 디스펜서는 LCD 산업에 필수적인 장비다.
[매일경제,파주=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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