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행정부가 월가를 겨냥해 경제범죄와 전쟁을 선포했다. 최근 미국 검찰은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에 대해 사기혐의로 수사에 착수한데 이어 모건스탠리를 비롯한 6개 대형 투자은행에 사정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월가를 대표하는 대형 투자은행들이 연방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미국 금융계는 사기꾼들의 소굴이란 불명예 속에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골드만삭스 때리기’는 세계 금융시장을 주무르는 큰 손들의 탐욕과 방종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대형은행들은 정부구제금융을 받으면서도 대규모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 몰지각한 행태로 미국인들의 미움을 사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동안 금융규제 완화가 지나쳤다는 비판여론을 등에 업고 대형은행들의 업무범위를 대폭 제한하는 금융개혁법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일 상원을 통과한 금융개혁법안은 자기자본거래의 금지, 파생상품의 규제, 은행의 헤지펀드 운영불허 등의 내용을 명시하고 있어 투자은행들의 고수익 추구에 족쇄가 될 전망이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골드만삭스를 사기 혐의로 전격 제소한 것은 월스트리트 길들이기, 대규모 금융개혁을 위한 시범케이스로 단단히 걸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사기 혐의로 기소된 핵심이유는 미국발 금융위기에 원인을 제공한 서브프라임 파생상품을 판매하면서 석연치 않은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검찰수사의 초점은 거대 투자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부채담보부증권(CDO)을 판매하면서 투자자들에게 사기를 쳤는지 여부에 맞춰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판매자는 자신이 파는 상품의 가치가 높다고 구매자를 설득하기 마련이다. 만약 상품가치가 쓰레기란 사실을 알면서도 터무니 없이 비싸게 팔아치운 정황이 나오면 해당 판매자에게 사기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부채담보부증권(CDO)를 판매해 놓고서 정작 자신들은 그 증권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반대 방향으로 투자해 큰 이익을 봤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검찰 측은 상당수 펀드회사와 투자은행이 자신들이 설계하고 판매한 증권의 가치하락에 베팅했고 주택담보대출시장의 거품이 붕괴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올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모건 스탠리를 비롯한 금융회사들은 자칫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낙인찍힐까 노심초사하면서 미국정부의 전방위 압력에 반발하고 있다. 그들의 반박논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모든 파생상품은 기초자산의 가격상승과 가격하락에 각각 배팅하는 양측의 포지션 교환으로 이뤄진다. 비록 주택담보대출에 기반한 금융상품을 구매한 투자회사가 엄청난 손해를 보고 사회적 파장이 크다고 해도 ‘선수들끼리 통상적인 거래’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하며 정부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모건 스탠리는 서브프라임 사태 외에도 요즘 세계 경제를 흔드는 그리스의 재정문제를 악화시킨 주범이란 의혹도 받고 있다. 유럽 금융전문가들은 그리스 정부의 재정적자 문제가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며 언젠가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란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런 그리스 정부의 재정위험도를 양호하게 평가하고 금융시장에서 꾸준히 돈을 끌어준 대표적 금융기관이 골드만삭스다.
그리스에 선심쓰는 척 돈을 빌려주면서 거꾸로 그리스 정부가 부도날 상황에 베팅하는 파생상품을 만들어서 대박을 노렸다는 음모론이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이처럼 한 나라의 경제를 파산시키면서도 초고액연봉을 추구하는 금융엘리트 집단의 범죄적 행위가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 한국경제의 입장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추구하는 금융개혁안은 꼭 성공할 필요가 있다. 경제범죄의 거대악을 제거하지 못하면 세계경제는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에 뒤이어 또 다른 금융위기를 수년내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제임스 갈브레이스 교수의 독설. 시장경제에 법의 규제를 허하라.
지난 2006년 작고한 미국의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 하버드대 교수는 ‘선량한 사기의 경제학’이라는 저서에서 금전적 이해관계로 인해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진실이 아닌 행동(사기)을 하는 미국경제의 현실을 개탄했다.
주류 경제학의 모순점을 신랄하게 비판해온 갈브레이스는 “경제는 도덕이란 바다에 떠 있는 섬”이라며 윤리와 도덕에 토대를 두지 않은 경제발전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그의 아들인 제임스 갈브레이스 텍사스대 교수는 지난주 상원법사위원회에서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한 월가를 법의 규제하에 두도록 즉각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연설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버지처럼 진보성향의 경제학자인 아들 갈브레이스 교수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 1980년대 이후 주류 경제학이 내세웠던 가정들. 경제주체들의 합리적 기대와 시장규율, 효율적 시장원리에 따라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이 꾸준히 자정기능을 발휘할 것이란 기대는 완전히 깨졌다. 사람이란 권력을 갖게 되면 반드시 남용하기 마련이다. 모든 사회조직은 부패방지를 위해 사법부를 통한 견제를 받는데 유독 경제부문은 법제도의 통제에서 벗어나 곳곳에서 사기꾼들이 판치는 무법천지가 됐다.
모든 경제연구가 수익성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경제와 범죄학을 연결시키는 연구자도 없고, 당연히 연구기관도 전무한 실정이다. 갈브레이스 교수는 2000년 초 엔론사태,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를 포함한 대규모의 금융사기는 거의 일정한 3단계 패턴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대규모 금융사기의 첫번째 단계는 신용도가 낮은 불량채권을 모아서 그럴듯한 고수익 증권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펀드회사와 대형은행, 유명한 회계법인이 손발을 맞춰서 회수여부가 불확실한 주택담보대출건을 외형상 짭짤한 수익을 보장하는 금융상품으로 둔갑시킨다. 두번째 단계는 신용평가사가 실제로는 쓰레기 수준인 증권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바꾼다. 이 과정에서 증권의 위험수준을 낮추기 위해 통계치와 평가기준의 조작이 흔히 이뤄진다. 마지막 세번째 단계는 미심쩍어 하는 투자자를 위해 위험한 증권을 보장하는 보험상품까지 만드는 것이다. 보험회사 AIG는 주택담보대출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을 경우 판매자가 원금을 지급해주는 보험상품을 팔았다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금융사기의 전형적 과정을 살펴보면 특정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은행, 펀드사, 회계법인, 신용평가사까지 금융계 전체가 공범으로 관여했음이 드러난다. 갈브레이스 교수는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의 이메일 기록과 거래내역을 철저히 조사하면 금융사기 의도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험한 금융상품을 고안하고 거래한 당사자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취급하는 금융상품에 대해서 닌자펀드, 독약, 쓰레기펀드, 너도 나도 자리에 없을 것(IBG, YBG: I’ll be gone, you’ll be gone) 같은 속어를 쓴 것으로 봐서 금융사기의 실체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어떤 견제도 받지 않은 금융회사들이 모래 위에 황금의 성을 쌓은 때문이다. 결국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폭탄돌리기에 너도나도 참여한 금융계 전체의 도덕적 해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갈브레이스 교수가 지적한 금융위기의 교훈 중에서 우리가 귀 담아둘 내용은 경제활동과 범죄를 연계시키는 경제범죄학(經濟犯罪學)의 필요성이다. 작금의 경제학 연구는 오로지 이윤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이기적 욕망만 추구하며 양심이 부재한 금융 전문가를 상당수 배출해낸 부작용을 부인할 수 없다.
안철수 교수는 미국에서 MBA과정을 공부할 때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들을 10년 후에 찾아 보았더니 다들 감옥에 있더라’는 법대교수의 회한을 소개한 바 있다. 요즘 웬만한 대학마다 돈되는 MBA코스를 키우는데 집중하고 있지만 천편일률적인 교육과정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냉철히 반성해볼 시점이다. 만약 경제시스템의 병적요소를 짚어내고 개선하는 전문가를 양산하는 경제범죄 대학원과정이 세계최초로 한국에 생긴다면 개인과 사회 모두에 훨씬 바람직하지 않을까.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제임스 갈브레이스 교수가 지적한 금융위기마다 반복되는 3단계 사기패턴
1단계: 신용도가 극히 낮은 부실채권을 묶어서 외형상 고수익 증권으로 포장한다. (펀드회사+투자은행+회계법인)
2단계: 신용평가회사가 통계조작으로 증권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바꾼다. (신용평가회사)
3단계: 그래도 못 믿는 투자자를 위해 증권을 보장하는 보험상품까지 들어준다. (보험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