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을 갔는데 한글로 이메일을 쓸 수 없다면?
이미 생각만 해도 답답해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해외에서 일어난 사건의 기사전송도 실시간으로 한글로 할 정도로 인터넷에서 한글을 쓴다는 일은 이제는 일상이 됐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한글 사용은 불과 16년 전에는 매우 혁신적이고 놀라운 일이었다.
1994년 5월 24일자 전자신문에는 “지구촌 어디서나 인터네트를 통해 한글로 작성한 문서를 손쉽게 주고 받을 수 있게 됐다”로 시작하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미국 PC통신서비스 업계의 강자였던 ‘컴퓨서브’를 국내에서 제공하던 에이텔이 사상 최초로 이메일에서 한글 지원을 시작한 것이다. 컴퓨서브가 새로운 PC 통신 프로그램인 ‘WINCIM 1.4"를 선보이면서 한글 지원을 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당시 한글 이메일을 보내기 위해서는 모뎀 세팅 방식과 문자 모양 방식을 모두 바꿔야했고, 이용자는 사용자가 ‘한글 윈도우 3.1’이상을 가지고 문서를 작성할 때만 가능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한글 하나 쓰는데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나 싶지만, 한글로 된 문서를 일일이 영어로 번역해 보내야 하는 번거로움에 비하며 한층 간편한 방식이었다. 이 서비스 도입 당시는 일반인에게 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이라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기업 관계자들이었다. 해외 지사의 한국 직원과 소통할 때조차 영어를 써야했을 불편함을 생각해보면, 이들에게 얼마나 유용한 서비스였을 지 쉽게 짐작이 간다.
한글로 이메일을 주고 받는 서비스는 컴퓨서브의 서비스가 최초는 아니었다. 이보다 10년 앞선 1985년 한글 이메일 서비스에 대한 실험은 시작됐다. 1983년, KAIST에서 발표한 ‘한글 메일 시스템의 개발에 관한 연구’ 논문을 토대로 1985년 한글 전자우편 프로그램과 한글 에디터인 hvi라는 프로그램이 개발됐다. 하지만 이는 국내 이용자 간의 수발신만 가능하단 한계가 있었다. 컴퓨서브의 서비스는 국가 간 장벽을 넘어 한글로 소통하게 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
컴퓨서브의 이메일 서비스는 월드와이드웹의 등장으로 인터넷 접속 방식이 달라지고, 컴퓨서브가 힘을 잃으면서 자연스레 사장된다.
이후 약간의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글로벌 서비스에서 한글 사용은 많이 자유로워졌다.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를 이용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우리가 아무 감각 없이 받아들이는 이 일상에도 유의미한 첫걸음이 있었음을 한 번쯤은 기억해봄직하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