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편지 108통
십수년 만에 편지 부칠 일이 생겼다. 서류를 직접 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대형 체인 문구점에서 250원짜리 우표를 샀다. 예전엔 10원이었는데…. 점원에게 풀 좀 빌리자고 했더니 그냥 떼어 붙이란다. 우표는 어느새 스티커 형태로 진화해 있었다. 밥풀을 쓱쓱 문지르거나 침을 발라 붙이던 옛날이 새삼 떠오른다. 이제 우체통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주변에서 우체통을 본 기억이 없다….
어릴 때는 손편지를 곧잘 썼다. 반드시 써야만 하는 목록도 많았다. 국군장병 위문편지, 자매결연 맺은 학교 학생들에게 편지 쓰기 등. 멀리 사는 미지의 친구들과 펜팔도 했다. 우상이었던 가수에게도 우표를 붙여 팬레터를 보냈다. 외국에 이민 간 친구에게 손편지를 꾹꾹 눌러 써 우체국에 가면 봉투를 저울 위에 올려 무게를 달았다. 몇 주에 걸쳐 친구 손에 도착한 편지에 답장이 오기까지 또 보름이 넘게 걸렸다. 우체통을 열고 모서리에 빨강파랑 빗금이 쳐 있던 국제우편봉투을 발견하고 설렜던 기분을 잊지 못한다.
편지가 실종됐다고 하지만 사실 예전보다 몇 배 더 ‘편지’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메일, 문자메시지, 트위터, 블로그라는 이름의 편지들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설렘과 기대, 흥분, 황홀한 느낌이 있을까. 진정한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인가 잃어버린 기분이다.
저자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9개월 동안 가족, 지인 90여 명에게 보낸 108통의 편지를 책으로 묶었다. 200자 원고지로 2200장이 넘는 분량이다. 자신을 ‘생활칼럼니스트’라고 칭하는 저자는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학문,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편지에 담았다. ‘거리에 빨간 우체통과 공중전화 부스가 점차 사라지는 시대는 우울하다…(중략) 매스컴은 듣기 좋게 ‘소통의 시대’를 얘기한다. 비록 주고받는 편지 한 통이지만 사랑과 우정의 소통은 무한대다. 오늘 가까이 있는 누군가를 떠올려 사랑의 편지 한 통 썼으면 좋겠다.’ 최영록 지음. 이부키출판사 펴냄. 1만원.
황지혜기자 goti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