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간의 전쟁은 끝났다. 이제 남은 자들이 치러야할 개인의 생존, 꿈에 대한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이 스쳐간 이들의 현재는 폐허다. 사이공의 킴과 미군병사 크리스도 다르지 않다. 그리움과 악몽의 반복 속에서 현실과의 정상적 조우를 꿈꾸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4대 뮤지컬이라 불리는 대작 중 마지막으로 국내 상륙한 뮤지컬 ‘미스사이공’은 이렇듯 비극으로 충만하다.
보지 않았어도 모두가 알고 있는 소재의 뮤지컬 ‘미스사이공’은 그 흔한 ‘비련의 여주인공’ 킴을 조명한다. 전쟁 속에서 가족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다 표류한 곳은 드림랜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그곳의 여성들은 모두 같은 표정을 걸치고 있다. 미군에 대한 악의와 조롱으로 가득하나 애써 웃는다. 여인들의 ‘값’만큼이나 싼 희망이 난무하는 그곳에서 킴은 크리스를 만난다.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사랑에 빠진 그들은 정신을 차릴 시간도 없이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찰나적 사랑이 킴의 남은 삶을 조정한다.
관객은 킴의 미련함에 속이 터지면서도 함께 눈물 흘리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지구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찬란할 멜로적 감성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만나 거대해지고 모성의 힘을 입어 견고해진다. 식상하지만 인류보편의 원초적, 고전적 감성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도 모호하다.
킴은 물론, 여인들을 파는 엔지니어 역시 시대의 또 다른 피해자다. 도덕적 우월주위에 빠져있는 미국은 부이도이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보이나 어쨌든 그들의 삶도 황폐해졌다. 우리가 동양인이기에 불편할 오리엔털리즘은 그들의 눈물과 함께 어느 정도 씻겨나간다. 바닥에 고인 것은 배우들의 땀이 아니다. ‘인간’의 눈물이다. 단 하나, 관객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정확한 대상이 없다는 흠이 생겼다.
그럼에도 뮤지컬 ‘미스사이공’은 소문난 잔치에 참석한 관객들의 배를 충분히 채웠다. 감정이입을 하든 말든 충무아트홀 대극장 무대는 빈틈이 없다. 4년 동안 진화된 뮤지컬 ‘미스사이공’은 버릴 것 없는 캐릭터와 함께 더욱 단단해졌다. 무대에는 초연 당시 제반 여건으로 시도할 수 없었던 캐딜락이 등장한다. 이 무대용 캐딜락은 베트남전 당시 운행됐던 실제 모델로, 엔지니어의 아메리칸 드림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유명한 헬기 신은 국내 공연장의 한계를 영리하게 극복, 실감나는 영상을 보여주므로 객석을 진동케 했다. 무엇보다 이 장면의 위대함은 인간들의 절규를 혼란의 상황과 함께 극대화시켰다는 데 있다. 철망이 생사의 절대 권력인 듯 매달려있는 안과 밖의 인간은 위험하며 처절하다. 헬기가 떠나고 혼돈의 상황이 정적으로 바뀔 때, 남은 자들의 허무함은 여과 없이 그대로 전달된다. 사이공의 함락과 함께 차곡차곡 쌓았던 희망의 성도 무너졌다. 쓰디쓴 원액이 식도를 태운다. 음악은 이 모든 감정들을 자유자재로 조절, 관객을 농락할 만큼 아름답다.
화려한 볼거리의 마지막은 파국이다. 연인과의 달콤한 환상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것, 체념한 킴은 아들 탬을 보내고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눈다. 마지막 총성이 모든 게 끝났음을 알린다. 그녀의 전쟁 같은 생이 끝남과 동시에 공연도 막을 내린다. 비극만이 집요하게 살아남았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