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용기자의 책 다시 보기] 과학기술인! 우리의 자랑
한국과학문화재단(한국과학창의재단) 편저. 양문 펴냄.
249쪽을 펼쳤다. 윤덕용 한국과학기술원(KAIST) 명예교수의 얼굴이 보였다. 지난달 20일 서울 이태원로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한 그는 민·군 합동조사단 공동단장이었다.
맞닿은 금속 입자 간 경계면, 즉 계면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연구한 과학자이자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투철한 윤 교수는 지금 이런저런 ‘천안함 의혹’에 매우 예민한 상태인 것 같다. 지난달 31일 한 신문과의 회견에서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는 말로 여러 의혹을 일축했다. “과학만큼 신비롭고 아름다운 게 없다”(258쪽)고 여기며 평생 ‘이공계 위기’와 ‘노벨 과학상 수상’을 화두로 끌어안았던 과학자였기에 바늘 들어갈 틈조차 허락하지 않으려는 뜻으로 읽혔다.
불현듯 TV와 신문에 등장한 윤 교수가 책꽂이 외진 곳에 묻혀 있던 ‘과학기술인! 우리의 자랑(2006년 4월)’을 다시 열게 했다. 특히 그가 2006년 ‘제2회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을 받았을 때 남긴 인상적인 소감까지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그때 윤 교수는 “상금 3억원을 남북 과학자 교류를 활성화하는 데 쓰고 싶다”(전자신문 2006년 4월 21일자)고 말했다. 1940년 평양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직전에 남한에 온 뒤 1957년 경기고등학교 2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떠났던 과학자의 그때 그 마음(소감)이 그랬다.
2006년과 2010년 남북 관계는 천양지차! 한반도 남과 북의 기구한 역사 틈바구니에 낀 애꿎은 과학자 목록에 한 사람 더 추가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책을 다시 펼친 김에 이리저리 쪽을 넘기다 보니 ‘미래는 크게 내다보고 현실은 빈틈없이 살핀다’는 ‘대관세찰(大觀細察)’을 좌우명으로 삼은(176쪽) 서정욱 명지대 석좌교수에게 시선이 닿았다. 1990년대 정부(체신부)가 그린 장밋빛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이동통신 상용화 시나리오를 ‘무리한 발상’(173쪽)으로 읽어낸 그의 시각에 다시 붙들린 것.
그는 “삼성, LG, 현대, 맥슨 등 국내 제조업체들이 동상이몽의 각개약진”을 하는 상황을 개선하지 못했다면 “(CDMA가) 한국 통신산업에 회복할 수 없는 재앙”이 됐을 것으로 보았다. 서 교수는 이후 6년간 ‘재앙’을 ‘신화’로 바꾸는 쇠고집 추진력을 선보였다.
한국과학문화재단은 이 책으로 청소년에게 희망의 나침반이 될 ‘우리의 자랑스러운 과학기술인’ 47명을 소개하려 했으되, 기자는 이 책을 인물 사전처럼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읽었다. ‘통섭’을 화두로 삼아 영문학자(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와 흉금을 터놓고 ‘대담’(2005년 11월, 휴머니스트)하는 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453쪽)로부터 신희섭(198쪽), 이상엽(299쪽), 임지순(367쪽), 정광화(377쪽) 등 굴지의 과학자들과 책 안에서 즐겁게 만났다. 이공계 출신이되 과학자라기보다 행정가나 기업인이라고 할 이들의 이야기에 밑줄 쳐가며 시선을 준 것도 인물 사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운 과학기술인을 모았다’는 발간사를 쓴 나도선 당시 과학문화재단 이사장이 자신을 ‘과학문화를 전파하는 과학자’(85쪽)로 소개한 것은 희극을 보는 것 같아 자꾸 웃음이 나오려 한다.
국제팀장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