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컴퓨팅의 기저에는 가상화 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는 데이터센터 내 여러 서버들과 스토리지들 혹은 여러 데이터센터에 분산돼 있는 자원을 하나의 풀(Pool)로 만들어 공유할 수 있는 가상화가 필수다.
애플리케이션이 데이터센터 자원을 공유하면서 워크로드에 따라 리소스를 자유롭게 재배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상화의 장점이다. 하드웨어의 유휴 자원을 줄이고 한정된 자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클라우드 서비스 구현 목적이 아니더라도 서버 가상화와 데스크톱 가상화 등 가상화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가상화 적용 사례도 점차 늘고 있지만 가상화로 달려가는 기업들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 있다. 바로 가상 환경에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SW) 라이선스다.
데스크톱 가상화의 초기 형태인 신(thin) 클라이언트 서버기반컴퓨팅(SBC)과 달리 데스크톱 가상화(VDI)의 경우 개인마다 기본적으로 2개 이상의 운용체계(OS)를 사용한다. SBC의 프리젠테이션 가상화에서는 서버에서 오피스 등 PC용 애플리케이션이 구현되고 그 화면 결과값만 데스크톱에 보여지는 것이므로 1개의 OS 라이선스만 사용됐다. 하지만 데스크톱 OS도 서버 자원을 이용하는 데스크톱 가상화 환경(VDI)에서는 단순 계산하면 SW 라이선스가 2배 늘어난다.
서버 가상화의 경우 교체 대상인 기존 노후화 서버의 OS나 애플리케이션의 라이선스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각각 전용 서버에서 운영되던 애플리케이션들을 모아 한 서버에서 운영하는데 동일한 라이선스를 지불하는 것은 손해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가상 환경에서도 똑같은 라이선스 정책은 불만=최근 1차 데스크톱 가상화 프로젝트를 끝마친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프로젝트 중반에 다소 당황스런 상황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공공기관은 PC 1대에 2개의 운영 환경을 구현하기로 했다. PC 자체적으로 운영되는 개인 업무용 환경(로컬)과, 데스크톱 가상화 환경에 의해 서버에서 제공되는 가상 데스크톱이 운영되는 환경이다.
그런데 로컬 데스크톱과 서버에 의한 가상 데스크톱 환경 각가에 대해 OS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프로젝트 중반에 가서야 알았다. 이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가상화 솔루션 업체의 파트너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결국 소폭 할인된 가격으로 2카피의 OS를 구매하는 것으로 상황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사용하는 PC 장비는 그대로인데 가상환경(VM) 기준으로 라이선스 정책이 바뀌는 것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데스크톱 가상화의 적용 규모가 커질수록, 클라우드 서비스가 폭넓게 사용될수록 가상 환경에서의 SW 라이선스 문제가 부상한다. 단지 OS뿐만이 아니다. 가상 환경에서는 MS 오피스나 한글 등 오피스 SW,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등이 위와 같은 논란에 휩싸일 소지가 충분하다.
서버 가상화는 메모리, CPU 등을 하드웨어 자원의 활용률을 최대로 높이기 위한 기술이다. 평상시에는 자원 활용에 최적의 성능을 발휘하지만 피크타임일 때에는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서버 SW는 CPU 성능을 기준으로 라이선스 정책이 정해지는 편이다. 전용 서버가 아닌 가상화된 서버 환경에서도 이런 점을 반영하지 못할 경우 사용자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고객뿐만 아니라 VM웨어를 비롯한 가상화 솔루션 제공 업체들도 제안서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SW 업체들이 가상 환경에서 명확하고 일관적인 라이선스 정책을 적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명확하지 않은 정책 때문에 가상화 도입 미뤄=SW 라이선스 논란은 수년 전 듀얼코어, 쿼드코어 등 멀티코어들이 출시되면서 불거졌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코어 개수는 따지지 않고 각 프로세서(CPU)에만 SW 라이선스를 적용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일단락 지은 바 있다. 하지만 가상화 확산과 함께 라이선스 불만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데스크톱 가상화를 1000대 규모로 구현하고 1카피당 대략 10만원인 SW를 각 사용자에게 배포해야 한다면 데스크톱 가상화 환경에서 OS 비용만 2억원에 이른다. 일부 고객들은 가상 머신에 적용되는 SW 비용도 제값을 다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일각에선 SW 라이선스가 클라우드 컴퓨팅의 핵심인 가상화 기술 확산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는 향후 클라우드 컴퓨팅 도입을 고려하는 CIO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가 되고 있다.
◇상황별·요구사항별로 구분된 정책 필요=각 벤더들이 독자적으로 가상 환경에서의 SW 라이선스 정책을 제공하고 있지만, 고객들은 이런 정책들이 과연 고객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정책인지는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일부 정책들은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사용자가 원하는 것은 카피 수에 비례하는 할인률이다. 일정 볼륨 이상 구매해야만 할인해주는 라이선스 정책은 데스크톱 가상화를 단계별로 구현, 시도하려는 기업들에게 반갑지 않은 존재다. A 식품업체 CIO는 “1대의 물리적 서버에 10대의 가상머신이 구현되어 있다고 해서 10대의 SW 라이선스를 다 적용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려운 정책”이라며 “VM용 라이선스를 따로 만들든지, 아니면 서버 성능을 기준으로 라이선스 정책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가상화용 라이선스 정책이 구비한 OS나 애플리케이션 업체가 있다면 우선적으로 도입을 고려할 예정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다른 CIO는 “관계자들은 고객의 입장에서는 비용이 최소화되는 것이 좋겠지만, 합리적인 수준에서 상호 윈윈을 이끌어내야 한다”며 벤더와 고객사 간의 적당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물리적이든 가상 환경이든 실제 업무가 이뤄지는 환경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맞다”며 “고객 역시 비용이 들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가상화를 통해 비용절감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제값을 다 주고 가상화 기술을 도입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상화 기술의 도입이 더딘 것은 아직 제반 SW를 비롯한 초기 도입비용이 높기 때문이며, 가상화 보급 속도가 느린 것도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SW 업체와 가상화 업체가 합의해야 할 문제=CIO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SW가 무상 제공되는 경향에 데스크톱 가상화가 역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구글 오피스와 크롬OS 등 최소한의 비용 혹은 무료로 제공되는 OS와 오피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의 시장점유율을 무기로 ‘끝물 강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머지 않아 무상화 될 SW를 지금 투자하는 것이 타당한지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국내 업무 환경의 특성을 고려해 파견직이나 용역직, 한시적 근무자를 고려한 라이선스 정책도 필요하다. 하드웨어 유휴 자원을 줄이기 위해 가상화를 하는 만큼 SW 역시 사용 시간을 기준으로 라이선스를 부과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1000명의 임직원이 PC를 사용하지만 외근 등이 많은 업무 환경이어서 최대 동시 접속 사용자가 700명이라면, 환경은 1000명에 대해 구현하고 라이선스는 700명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손해보험사 CIO는 “적당한 수준에서 볼륨 할인을 해주거나 단위 가격을 낮춰주는 형태로 고객의 TCO 절감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가상화가 확산될수록 SW 업체는 라이선스를 추가 판매할 수 있게 되고 결국 고객과 벤더가 상호 윈윈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가상화 환경에서는 워크로드 관리를 위해 수시로 CPU 리소스를 재할당하게 된다. 이에 따라 좀 더 유연하고 세분화된 라이선스 정책만이 가상화를 적용하고 확장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코어 기준 라이선스 정책이 아니라, 다시 세분화해 코어마다 다른 라이선스 정책을 차등 적용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가상화 환경에서의 라이선스 정책은 사용자와 OS 등 SW 업체들이 풀 문제가 아니라 SW 업체와 가상화 업체들이 합의점을 도출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미 확대일로를 걷고 있는 가상화 시장에서 고객들을 위한 양측 진영의 보다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라이선스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주장이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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