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자기업을 대표하는 소니와 파나소닉. 공교롭게 두 회사는 최근 잇따라 국내 사령탑을 교체했다. 소니는 일본 본사에서 파견한 일본인이, 파나소닉은 처음으로 현지인이 대표를 맡아 눈길을 끌었다. 소니에 20년 넘게 몸 담아 정통 ‘소니맨’을 자처하는 윤여을 사장과 국내에 진출할 당시부터 파나소닉에서 근무했던 ‘파나소닉맨’ 신임 노운하 사장을 만나봤다.
물러나는 CEO - 윤여을 사장
퇴임을 앞둔 윤여을 소니코리아 사장(54)은 일본 기업의 강점으로 기술력과 섬세함, 약점으로 일본 기업 특유의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를 꼽았다. 최근 삼성·LG 등 국내 기업이 선전한 데 반해, 일본이 주춤한 데는 ‘시장 타이밍’과 ‘빠른 의사결정’ 두 가지 면에서 미흡했다고 덧붙였다. 과거 일본을 벤치마킹해 성장한 국내 기업도 일순 방심하면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신기술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집착한 면이 있습니다. 과거 제조업 시대에는 앞선 기술이 제품 경쟁력이었지만 디지털로 넘어가면서 기술 못지 않게 타이밍이 중요한 데 지나치게 이를 간과했습니다. ‘품질은 역시 일본’이라는 명제를 만들었지만 자꾸 제품이 시장에 뒤처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봅니다.”
윤 사장은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을 모두 집어 넣어 일종의 ‘오버 스펙’ 현상이 벌어졌다”며 “과도할 정도로 기능 위주로 제품을 개발하면서 소비자의 인사이트한 요구를 정확하게 읽지 못한 점이 아슀다”고 말했다.
윤 사장은 1989년 소니뮤직 사장으로 소니와 인연을 맺은 후 2005년 소니코리아 사장까지 20년을 소니 지역법인 CEO로 재직했다. 소니뮤직과 소니엔터테인먼트 법인을 국내에 처음 설립할 정도로 소니가 한국에 연착륙하는 데 기여했다. 2005년 소니코리아를 맡은 후 5년 만에 매출 8000억원에서 1조2000억원 규모로 키워냈다. 지난해에는 해외 법인 중 유일하게 ‘최고 실적상’까지 받았다.
이달 말 공식적으로 물러나는 윤 사장은 “아쉬움은 있지만 미련은 없다”고 강조했다. 20년 동안 소니와 동고동락을 같이한 ‘소니맨’ 윤 사장은 “전성기 당시 소니의 위상이 아쉽다”며 “그러나 아직도 소니 특유의 DNA는 곳곳에 남아 있어 소니 부활의 날이 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새로 맡은 CEO - 노운하 파나소닉코리아 사장
일본 파나소닉이 한국에 진출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을 대표로 임명했다. 주인공은 노운하 파나소닉코리아 사장(51). 도요타와 더불어 일본에서도 보수적 경영으로 손꼽히는 파나소닉이 현지 대표를 선임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소니가 일본인 사장으로 한국법인 대표를 교체하는 시점과 맞물려 파나소닉의 선택은 파장이 컸다.
노운하 사장은 2000년 11월 파나소닉이 한국에 진출할 당시 소위 창업 공신으로 참여한 뒤 줄곧 마케팅 영업 분야를 책임져 왔다. 노 사장은 “사장 취임 이후 달라진 건 별로 없다”며 “굳이 변화라면 인사·총무·재무 업무가 늘었고, 책임감이 그만큼 커졌다”고 설명했다.
노운하 사장은 아남전자·미래통신 등에서 일했으며 2000년 11월 이후 파나소닉맨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일본과 한국이라는 두 나라의 정서를 잘 반영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 같다”며 “현지화를 선도하면서 한국의 친환경 녹색성장에도 기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기업 중 가장 보수적 기업인 마쓰시타전기의 기업 철학을 한국에 최적화해 가장 오래 장수하는 일본 기업으로 남겠다는 것이다.
파나소닉코리아는 2000년대 중반 디지털TV 등 AV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한 때 위기를 맞았으나 2007년 이후 안정적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창립 10주년을 맞는 올해, 3D 핸드헬드 방송카메라, 하이브리드 카메라 등 기술적 강점을 지닌 제품으로 승부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특히 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디지털카메라 사업 강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노 사장은 “최근 원·엔 환율이 급등락해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환율이 크게 변수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올해 800억원 이상 매출을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