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칼럼] 그랜드 투어

 여행만큼 우리에게 생생한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은 없다. 평소에 보지 못하던 풍경과 물건, 사람을 보고, 체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행을 갈 때 누구와 함께 가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어떤 지식을 가지고 보는지에 따라 중요도와 해석이 크게 달라진다. 때에 따라서는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지식은 여행의 가치를 높이는 데 중요하다. 자신이 공부를 해서 여행을 가면 좋지만 보다 식견 있는 사람과 함께 여행을 가면 더욱 좋을 것이다.

 18세기 유럽에서는 귀족들이 자녀를 교육시키기 위해 식견 있는 사람을 선생으로 모시고 함께 자식을 여행 보내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른바 그랜드 투어(grand tour)다. 당시 이 그랜드 투어가 얼마나 인기를 끌었던지 귀족 자제들이 대학을 다니지 않아 유럽의 주요 대학들은 재정상황이 나빠져 전전긍긍했다.

 우리는 근대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를 잘 안다. 그런데 그가 글래스고대학 교수직을 포기하고 귀족 자제의 선생 자격으로 프랑스로 그랜드 투어를 떠났다는 사실을 아는가.

 애덤 스미스는 1759년에 ‘도덕감정론’을 출간해 유명해졌는데 학교의 도덕철학 교수직에 싫증을 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댈키스 백작부인으로부터 자신의 장남인 헨리 스콧의 가정교사가 돼 그랜드 투어를 떠나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 부인의 남편은 버클루 공작이었는데 그가 사망하자 찰스 타운젠드와 재혼한 상태였다. 찰스 타운젠드는 나중에 영국의 재무장관이 되고 헨리 스콧은 버클루 공작이 된다.

 애덤 스미스는 왜 교수직을 포기하고 가정교사를 선택했을까. 여행 경비 일체와 매년 300파운드의 봉급, 그리고 매년 300파운드의 연금을 추가로 받게 되는데 이 금액은 글래스고대학으로부터 받는 봉급의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는 1764년부터 1766년까지 프랑스, 스위스를 돌며 여행을 헀다.

 이 그랜드 투어는 헨리 스콧에게도 도움이 됐지만 애덤 스미스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 프랑스 중농학자 케네, 철학자 볼테르, 정치가이며 과학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을 만나면서 크게 견문을 넓혔고 마침내 1776년에 출간된 불후의 명작 ‘국부론’을 쓰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와 로마에 여행을 가는 데 그리스, 로마 신화에 정통한 이윤기님과 함께 여행을 간다면 어떨까. 우리나라의 갈라파고스라고 불리는 옹진군 굴업도에 갈 때 저명한 사진작가 배병우님과 함께 여행을 한다면 어떨까.

 아는 만큼 보인다. 후루룩 얼렁뚱땅 여행을 가지 말고 진정한 의미의 여행인 그랜드 투어를 가보자. 특히 자식을 교육시키는 대안 교육으로 그랜드 투어를 생각해보자. 이미 이런 그랜드 투어 방식의 여행 프로그램이 부분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대부분 일정이 짧다. 여름방학 내내 가는 보다 긴 그랜드 투어 프로그램이 나오면 정말 좋을 것이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 겸 이마스 대표 mjkim896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