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1000만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의 승용차는 어떤 사람들이 타는 걸까? 아주 쉽고 간단하게 대답한다면, 메르세데스-벤츠 S600보다 더 비싼 차를 타기 원하는 사람들이다. 벤틀리가 바로 그들을 위한 자동차다.
벤틀리는 1919년 창업, 무려 9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 중 3분의 2가 넘는 67년을 롤스로이스의 동생으로 지내다가 지난 98년에야 롤스로이스의 그늘을 벗어났다. 폭스바겐 패밀리가 되면서 매력적인 신차를 연거푸 선보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지금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
벤틀리는 전통적인 모델인 아나지 계열과, 폭스바겐과 함께 만든 컨티넨탈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는데, 컨티넨탈 시리즈는 다시, 세단인 플라잉스퍼와 쿠페인 GT, 컨버터블인 GTC로 나뉜다. 그리고 2007년부터는 세 가지 모델의 고성능 버전인 스피드 모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시승한 차는 세단형인 컨티넨탈 플라잉스퍼의 고성능 모델인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스피드’로 지난 2008년 등장한 모델이다.
스피드란 이름이 붙으면서 가장 크게 변한 부분은 560마력을 발휘하던 V12 트윈터보 6.0 엔진의 개량으로 출력이 무려 610마력으로 늘어난 점이다. 풀타임 4륜구동 방식과 자동 6단 변속기는 동일하다. 5미터가 넘고 2.5톤에 육박하는 이 거구도 610마력의 파워로 몰아붙이면 정지에서 100㎞/h까지 가속하는데 불과 4.8초밖에 걸리지 않고, 도로가 허락하면 무려 322㎞/h로 달릴 수도 있다. 스피드가 아닌 이전 모델에 비해 월등히 빨라진 가속 성능이 실감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파워가 넘치고, 원하는 만큼 달릴 수 있다. 초고성능에 어울리는 탄탄한 주행감각과 예리한 핸들링에서도 스포츠카의 향기가 묻어난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벤틀리를 가장 빠른 4도어 세단이라고 불러온 것이다.
물론 에어서스펜션을 조절하면 탄탄한 달리기뿐 아니라 최상의 안락함을 즐길 수도 있다. 따라서, 슈퍼카 뺨치는 달리기 실력을 가졌다고 노는 애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근엄하다고 할 수 있는 영국 황실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공식 의전차량이 벤틀리일 정도로 높은 명성과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벤틀리야 말로 지극히 귀족적이면서 지극히 파워풀한 지구상 몇 안 되는 명차 중의 하나라 할 만하다.
외관에서는 검게 그을린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 듀얼 원형 헤드램프, 앞에서 뒤까지 우아한 곡선으로 흐르는 보디라인 등에서 권위와 위엄이 살아있고, 높은 벨트라인과 클래식한 빗살무늬의 20인치 대형 휠, 그 속에 비치는 대형 브레이크 디스크와 벤틀리 로고가 새겨진 캘리퍼 등에서는 파워가 느껴진다.
벤틀리의 화려함은 실내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온통 가죽으로 덮은 것도 모자라 가죽에는 다이아몬드 형상의 스티치를 넣었고, 짙은 갈색의 리얼 우드 배니어와 차가운 크롬 장식들이 화려한 대조를 이룬다. 각 종 다이얼과 기어 레버에는 알루미늄을 줄처럼 까칠하게 처리해 촉감에서도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센터 페시아 상단에 자리한 브라이틀링 아날로그 시계도 빼놓을 수 없는 럭셔리 포인트다.
벤틀리가 오늘날 명차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갈 수 있게 된 것은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뛰어난 첨단 기술력이 어우러져 빚어낸 결과라 하겠다 글, 사진 박기돈기자 nodikar@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