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용기자의 책 다시보기]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 도정일·최재천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깊고 넓다. 2005년 11월, 책을 처음 손에 든 뒤로 꾸준히 가슴을 데었다.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영문학)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생물학)가 2001년 12월 10일부터 2004년 3월 26일까지 2년 3개월여 동안 열 차례나 만나며 풀어놓은 ‘본질’이기에 가슴에 숯덩이 같은 화상이 남았다. 여러 쪽, 여러 문장 밑줄이 여러 색깔로 울긋불긋해지면서 화상도 깊어졌다. 곧 책 표지가 떨어져나갈 것 같아 걱정이다.
“결국 다윈이었어요. 저를 사로잡은 정체 말이죠.”(55쪽)
최재천 교수는 “(생물이란) 절대적으로 자연발생된 것이라고 생각”(205쪽)하고 “결코 설계된 것은 아닐 것”(206쪽)으로 확신한다. 최 교수가 “학문과 관계없이 존경하는 사람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으되, 그 이야기의 끝도 다윈이었다(55쪽)는 게 그를 만난 이들의 전언이다.
최 교수는 그렇게 ‘확신’을 들고 세상을 ‘통섭(統攝)’하려는 과학자다.
“자기만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울타리를 걷어치울 줄도 알아야 하죠. 그래야 타자가 들어오거나 자기가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아녜요?”(32쪽)
도정일 교수가 사는 인문학적 삶의 제1조다. ‘가슴을 여는 사회’를 말한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한 도 교수는 문학과 신화를 든 채 ‘통섭하려는 과학자’를 그렇게 맞았다.
“사실 전체주의나 독재 아래서도 과학은 가능합니다. 과학자들만 따로 모아 놓고 일정 수준의 자유와 특혜를 주어 국가 발전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 전체주의·독재의 통치공학이고 ‘과학정책’이니까요. 그렇게 되면 과학은 권력이 양성하는 소수 특권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고 과학이 사회문화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힘은 극도로 제한되죠. 뿐만 아니라 권력과 과학기술의 연합이 독재권력을 강화합니다.”(105쪽)
인문학자 도정일의 촌철이다. 한 치에 불과하되 욕심 많고 귀 막힌 권력과 그에 빌붙는 일부 과학자의 심장에 닿을 말이다.
“한국의 제도 안에서는 개인의 유전적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길이 거의 없습니다. (중략) 우리는 단 한 개의 잣대로 모든 걸 가늠하려 합니다. 인간이 만일 지금까지 존재하는 동안 하나의 잣대에 맞추려 했다면 벌써 오래전에 멸종하고 말았을 겁니다.”(109쪽)
자연과학자 최재천의 맞장구다. 투박한 장단이되 ‘알지 못해 제대로 사랑할 수 없는’ 이들을 향한 경종이다.
인문학자는 “예술과 과학에는 자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361쪽)고 말하고, 자연과학자는 “인간은 확실히 과학만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아닌 것 같다”며 소통했다. 때로는 프로이트를 두고 ‘소설’과 ‘과학’ 사이에서 서로 긴장했다.
기자는 “(프로이트의 사례처럼) 지나친 인문학적 소양이 과학을 망칠 수도 있는 것”(484쪽)이라는 자연과학자의 확신에 한 표!
“‘화합’의 사회적 가치는 큰 것이지만, 그것이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지배적인 사회적 규범이 되면 사회는 비판과 이견이 설 자리가 없는 집단사고의 똥구덩이에 빠집니다.”(104쪽)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데 여전히 서투른 한국 사회에 던지는 인문학자의 지적에 또 한 표!
국제팀장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