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main stream)로 진입하라.’
정보기술(IT) 강국으로서 전 세계 IT시장의 주류라 굳게 믿었던 한국은 2010년 애플 아이폰의 등장으로 이 분야에서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음을 절감했다.
안문석 고려대 명예교수는 “휴대폰 보급률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아이폰과 같은 서비스가 먼저 나왔어야 했다. 이것을 놓친 것은 휴대폰의 작은 성공에 취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의 안이함의 결과다. 이른바 ‘성공의 실패’”라고 토로했다.
◇SW로 주류로 부상한 애플=아이폰은 수년 전 미국에서 처음 출시될 당시 한국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국은 아이폰이 아이팟 터치에 전화기능을 넣은 것에 불과하다거나 혹은 값비싼 장난감이라는 표현으로 제품의 가치를 평가절하했다. 아이폰을 해외에서 구매해 쓴 얼리 어답터들은 그저 ‘조금 별난 사람’ 정도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말 출시된 아이폰은 한 때 일일 개통량 8000대를 기록하며 6개월 만에 80만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혁신적인 아이폰 OS를 개발했고, 누구든 SW를 사고팔 수 있는 앱스토어라는 새로운 SW유통 시장을 열었다. SW에 제값을 주지 않는 한국과 달리 애플은 개발자에 수익의 70%를 배분했다. 콘텐츠 시장도 마찬가지다.
콘텐츠공급업체(CP)들도 보유하던 콘텐츠를 애플리케이션으로 변환해 앱스토어에 출시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애플은 앱스토어에 이용자를 동참하게 해 단말기 종류가 적다는 단점을 SW의 다양성으로 극복했다”고 말했다. 애플의 영업이익률은 41.7%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13% 수준에 불과하다.
◇SW 개발이 아닌 ‘유통’에 집중한 세일즈포스닷컴=미국 세일즈 포스닷컴은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aaS)를 들고 나와 SW는 사서 쓰는 것이 아니라 빌려 쓸 수도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했다. 마치 통신 서비스처럼 사용기간 혹은 전체 기능 중 원하는 것만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SaaS=세일즈포스닷컴’이라는 브랜드가치를 공고히 한 결과 이 회사의 성장세는 꺾일 줄 모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세일즈포스닷컴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22% 증가한 3억5400만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4분기에만 4600개의 고객을 새로 확보했다.
세일즈포스닷컴은 최근 ‘조직을 민첩하게 전환하라’는 슬로건을 새롭게 내세우며 다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클라우드 플랫폼 ‘포스닷컴(force.com)’을 선보여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SW와 서비스를 즉시 제공한다는 것이다.
◇비주류가 뭉쳐 새로운 주류를 창조하라=한국은 앞서 이 같은 혁신을 이루지 못해 자칫 비주류로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전문가들은 돌파구로 ‘협력’을 주문했다. HW업계와 SW업계, 통신사업자가 힘을 모아 새 비즈니스모델을 창출해야 한다는 뜻이다.
SW 업체 간 협력도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불필요한 출혈경쟁을 배제하고 규모를 대형화해 글로벌 기업에 맞설 만한 경쟁력 있는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융합 시대에는 기업별 경쟁력보다 이종 기업 간 협업(컬래버레이션)을 통한 기업군의 경쟁력이 시장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허경 기술표준원장은 “여러 분야의 산업을 아우르는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아이튠스를 통해 음악 등을 유통시키는 콘텐츠 제공사,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사, 아이폰·아이패드에서 실행되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기업이 수평적인 관계에서 각자의 장점을 결합한다면 한국 IT가 새로운 주류로 부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SW업계 한 사장은 “최근 여기저기서 SW 위기론을 주창하지만, 돌이켜보면 지난 수년간 SW업계가 한계상황에 내몰리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면서 “이는 한국이 뒤늦게나마 HW만으로 세계 IT시장을 선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만큼 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 위기는 새로운 기회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욱기자 coolj@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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