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핵포드 감독의 영화 ‘백야(White Night, 1985)’가 시작되면 관객은 약 7분 가량 숨을 쉴 수가 없다. 화면을 압도하는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니콜라이 역)의 춤이 환상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완벽한 균형미를 자랑하는 화면의 발레리노는 바흐의 파사칼리아 C단조, BWV 582를 배경으로 고뇌의 춤을 펼친다. 죽음을 부르는 팜므파탈의 압박에 스스로 목을 매는 젊은이의 모습으로 막이 내리면, 화면 속 관중들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보낸다. 그곳이 영화관만 아니었다면 우리도 함께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었을 법하다.
이제 우리도 무대 위의 그 젊은이를 직접 만나볼 수 있다. 국립발레단이 7월 무대에 올리는 ‘롤랑프티의 밤’이 그 주인공이다. 영화 백야의 도입을 장식하는 이 춤은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안무가 롤랑 프티(1924∼)의 ‘젊은이와 죽음’이다. 60년 이상 발레를 연출해 온 롤랑 프티, 그 중에서도 가장 환영받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젊은이와 죽음’이다. 놀랍게도 롤랑 프티가 이 작품을 안무할 당시의 나이 22세, 가장 번득이는 천재성을 발휘한 때이기도 하다. 이 스타일리쉬한 발레는 미술적 감각과 테크니컬한 동작들로 이뤄졌다.
‘젊은이와 죽음’에는 국내 대중들에게 유독 낯익은 장면이 있다. 바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한 발을 의자 위에 딛고 날아오르는 신이다. 이 장면은 유명 신발 CF에 사용되기도 했다.
국립발레단의 ‘롤랑프티의 밤’은 ‘젊은이와 죽음(20분)’ 외에도 ‘카르멘(45분)’, ‘아를르의 여인(35분)’을 선보인다. 세 작품은 현재 국립 파리 오페라 발레단과 밀라노 라스칼라 발레단의 레퍼토리로 공연되고 있는 작품들이다. 최초 한국 공연을 위해 롤랑 프티는 기꺼이 5년 라이선스를 허락, 국립발레단의 서울 공연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또한 이번 공연을 위해 롤랑 프티의 모든 오리지널 스태프들이 대거 내한해 수준 높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 안무가 롤랑 프티는 시대를 선도하는 세련된 감각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도발적이고 대담하며 그 자신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1924년 프랑스 빌몽블에서 출생한 롤랑 프티는 1933년 파리 오페라발레학교에 입학, 1939년 국립파리 오페라발레단에 입단했다. 1944년에는 발레단을 나와 이듬해 샹젤리제발레단을 결성했다. 1948년에는 롤랑프티파리발레단을 조직했다. 1953년에는 ‘이리’, ‘24시간의 상’ 등을 상연,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발레계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1954년 국립파리오페라 발레단 무용수였던 지지 장메르와 결혼, 그녀를 주역으로 한 작품에 정열을 쏟았다. 작품으로는 ‘실낙원’, ‘투랑가리라’, ‘노트르담 드 파리’ 등의 걸작이 있다. 1960년에는 영화 ‘블랙 타이츠’를 제작하고 1969년부터 카지노 드 파리를 운영했다. 1972년 ‘핑크 플로이드 발레’로 마르세이유 발레단을 창설, 26년간 예술 감독직을 맡았다.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총체적 예술의 선구자 롤랑 프티의 작품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인 국립발레단의 ‘롤랑프티의 밤’은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