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동차를 만들었고 컴퓨터를 만들었으며 스마트폰도 만들었다. 끝없는 인간의 ‘제조욕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신의 영역까지 침범해 생명체까지 직접 만들어냈다. 이른바 ‘인공 생명체’다.
지난 달 크레이그 벤터 박사(크레이그벤터연구소장)는 국제과학 저널 사이언스지를 통해 “인공적으로 합성한 유전자를 이용, 인공 합성 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연구진은 ‘미코플라스마 미코이데스’라는 세균의 게놈을 합성했다. 게놈이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를 합성한 용어로, 개인이 가진 DNA 전체를 의미한다. 미코플라스마 미코이데스는 세포벽이 거의 없고 단일 염색체를 가진 세균이다. 이 세균의 염기서열은 107만7947쌍(인간의 0.03% 수준)으로 연구팀은 DNA합성장치를 이용, 1080쌍 길이의 DNA조각 1000개를 합성해 만들었다. 그 후 이 조각을 효모 안에 집어넣어 하나의 게놈으로 완성하고, 이렇게 만든 합성 게놈을 이종 박테리아인 ‘미코플라스마 카프리콜룸’에 넣어 인공생명체를 만들었다.
이러한 인공생명체는 복제 생물이나 유전자변형생물체(LMO)와는 다르다. 복제 생물은 ‘똑같은 개체’ 생산을 위해 기존 생물체의 DNA를 그대로 따오는 것이고, LMO는 소수의 유전자를 합해 두 유전자 특성을 모두 지니도록 만든 것이지만 인공생명체는 완전히 새로운 개체다.
◇인공생명체, ‘황금알 낳는 세포’=벤터 박사는 국제연구그룹인 인간게놈프로젝트(HGP)와 함께 인간 게놈을 세계에서 최초로 해독한 민간 기업 셀레라지노믹스의 설립자다. 그가 인공 생명체 제조에 투자한 돈만 4000만달러(약 500억원)에 이른다. 그만큼 수익성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의약품의 원료가 되는 다양한 균주를 인공으로 제조하게 되면 자연 균주보다 훨씬 효율성이 높아진다. 필요한 기능만 가지고 있는 ‘맞춤형’이기 때문이다. 이미 벤터 박사는 “이르면 내년부터 독감 백신을 인공세포를 통해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환경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기존 유기물의 DNA를 개조해 만드는 친환경 바이오연료나 대기 중의 온실가스를 제거하는 미생물도 인공 합성 세포를 응용해 제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벤터 박사 연구팀은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엑손모빌과 이러한 분야에서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끝없는 논란, ‘인간이 가도 되는 길인가’=결국 인간은 생명체를 직접 만들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낸 셈이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과 해도 되는 것은 다르다. 인공 생명체를 두고 논란이 분분한 이유다. 벤터 박사팀은 윤리성 확보를 위해 ‘합성 세포’를 합성했다고 주장했지만 반대론자들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반대론자들은 인공생명체가 자연 생태계로 퍼져나가면서 환경을 파괴하거나 다른 생명체와 결합해 치명적인 병균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기존에 없던 병균이라 치료제 마련에도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끔찍한 생체 병기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걱정도 있다. 종교적인 이유에서의 반대론도 있다. 생명체 창조는 전적으로 신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인공 합성 세포 분야에서 벤처 박사와 자타가 공인하는 라이벌 관계인 조지 처치 하버드 의대 교수는 올해 2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TED 콘퍼런스에서 강연을 통해 “윤리적·정책적 타당성 검토는 연구 시작 훨씬 전부터 했다. 위험해 보이기 전에 정책적 고려를 마쳐놔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인공 생명체 연구가 윤리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는 그러나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생명체는 실험실에서만 살 수 없기 때문에 위험성은 당분간 없다. 논란이 뻔한 일이라고 해서 지레 그만두기엔 인공 생명체가 가져올 혜택이 너무도 크다”고 말했다. 윤리적 논란이 있을 수 있어도 결국 인간이 가야 할 길이라는 주장이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