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기업 혁신의 성공사례로 가장 많이 언급된 회사는 단연 애플이다. 이런 ‘애플 찬양’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판단을 하는 데는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는 애플이 각종 유명기관의 혁신기업 평가 보고서에서 ‘세계 1위’ 자리를 몇 년째 계속 유지하고 있고, 이 순위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애플은 2005년부터 6년 연속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세계 50대 혁신기업’ 1위로 선정됐다. 가트너의 ‘AMR 공급망 톱25’ 순위에서도 올해까지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BCG와 가트너의 조사 범위는 다르지만 혁신 활동의 재무적인 성과에 대한 평가와 함께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순위를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둘째는 며칠 전 발표된 ‘IBM 글로벌 CEO 스터디 2010’의 주요 메시지가 애플식 혁신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이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 1500여명의 CEO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이다.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애플처럼 싹 바꾸라’는 것이다. 전 세계 CEO들은 그래야 앞으로 5년 안에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느끼고 있다. 심하게 얘기하면 그렇게 해야 망하지 않을 수 있다고 평가한다. 물론 이 보고서에는 애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하지만 보고서가 제시한 CEO의 세 가지 혁신 과제, 즉 ‘창조적 리더십’ ‘고객관계 재정립’ ‘민첩하고 탁월한 운영능력’이 애플식 혁신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창조적 리더십, 고객관계 재정립, 민첩하고 탁월한 운영능력 세 가지 요소를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창조적 리더십을 갖추기 위해서는 애매모호함이나 실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실행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지배하는 환경에서 충분한 연구와 리뷰는 사치스러운 행위일 수 있다. 정밀한 계획과 시뮬레이션에 집착하는 사이에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자면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을 ‘파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리스크를 안으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어렵다.
사실상 죽어가던 애플을 살린 아이팟은 영업이익 20억달러를 안겨줬다. 아이팟의 성공은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실험정신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아이튠스가 처음 나왔을 때 1달러 음악파일 판매가 이처럼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 사람은 드물었다. 애플의 이런 도전정신은 아이폰-아이패드로 이어지며 성공신화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고객이 미처 깨닫기도 전에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한다는 애플의 통찰력이 빚어낸 성과다. 바로 IBM 글로벌 CEO 스터디 2010이 두 번째로 강조하는 ‘고객관계 재정립’의 대표적인 예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고객의 요청에 잘 응대하는 정도가 아니라 고객을 놀라게 해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다양한 부류의 고객은 물론이고 임직원, 파트너와 충분한 상호작용이 필요하며, 이런 체계를 시급하게 갖춰야 한다.”
민첩하고 탁월한 운영능력을 갖춰야 조직체계, 비용 측면에서 유연성을 확보하고 불확실성과 복잡성을 헤쳐가기 쉽고, 새로운 기회가 왔을 때 이를 확실하게 붙잡을 수 있다. 애플이 아이팟 사업을 시작할 때 준비한 기간은 고작 8개월이다. 민첩성 그 자체다.
브라질의 한 통신회사 CEO는 이렇게 토로했다. “현재 전체 매출에서 80%의 비중을 차지하는 주력 사업이 앞으로 5년 안에 두 번째 수익원으로 떨어질 것이다. 신규 수익원 발굴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보고서는 앞으로 5년 안에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해 매출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보고서를 읽고 보니 ‘창조(make)-파괴(break)-창조(make)`라는 요즘 자주 보이는 모 금융회사의 광고가 생각난다. 과연 우리는 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심각하게 자문해야 할 때다.
박서기 CIO BIZ+편집장 겸 교육센터장 sk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