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총 143억달러어치를 미국 시장에 파는 국내 가전업체의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 내년부터 미국에 가전제품을 판매하려면 미 환경청(EPA)이 지정한 제3의 시험기관으로부터 반드시 우수 에너지 효율 인증인 ‘에너지스타 마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지 소비자의 가전제품 선택 기준이 되다시피한 이 인증을 받지 못할 때 국내 가전업계가 입을 판매 감소액은 5억달러를 웃돌 전망이다. 연간 수출액의 3.5%에 이르는 규모다.
13일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에 따르면 미 환경청과 에너지부(DOE)는 지난 4월 이 같은 내용의 에너지스타 제도 변경을 공고했으며, 오는 11월 30일까지 관련 승인 절차 정비를 완료하고 내년부터 전 품목에 적용할 계획이다. 대상 품목은 컴퓨터·TV·냉장고·에어컨·세탁기·보일러·변압기 등 53개에 이른다.
이 조치로 내년부터 현지 생산품은 물론이고 국내 생산 제품까지 반드시 미 정부 지정 시험기관으로부터 발급받은 시험성적서를 환경청에 제출해 승인받아야 한다.
미 정부는 지난해부터 경제회생입법에 근거해 에너지스타 마크를 단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물론이고 구입하는 소비자에게 세금 혜택을 준다. 제조업체의 미국 내 생산공장엔 법인세 경감 혜택을 준다. 소비자는 에너지와 물의 효율 등급에 따라 식기세척기는 최대 75달러, 세탁기는 250달러, 냉장고는 200달러의 소비세를 감면받는다. 제조업체들이 인증을 꼭 받아야 하는 이유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전업체들이 미국에 수출한 규모는 멕시코와 미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해 판매한 것까지 합쳐 약 143억달러에 달한다. 에너지스타 마크를 적기에 받지 못할 경우, 판매저하에 따른 손해액은 5억2000만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는 업계와 협단체 전문가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일본과 중국 등 다른 나라와 공동 대응도 검토 중이다.
기표원은 미 정부 측에 시행 연기를 요청하는 한편 국내 시험소도 에너지스타 성적서를 발급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은호 기표원 기술규제대응과장은 “에너지스타 제도 개편으로 영향을 받는 제품들이 대형 전기·전자 제품 이외에 조명기기·유리창 등도 포함됐다”며 “기업은 선제 대응이 가능한 에너지스타 인증 루트를 개발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들은 정책 변화에 적잖은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한미 정부 간 제도시행 연기를 포함한 협상 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시험기관이 지정되면 시험 절차와 비용을 줄일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LG전자 관계자는 “비용과 시간이 추가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지만, 대미 가전제품 수출에 결정적인 악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김원석·이경민기자 stone201@etnews.co.kr
◆미 에너지스타(Energy Star)란=1992년 환경청(EPA)과 에너지부(DOE)가 공동 도입한 우수 효율 전기·전자제품에 대한 인증제도다. 지금까지는 임의 인증제로 시행해왔지만, 내년부터 미국 정부와 제조사와 관계되지 않은 제3자 시험성적서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