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아이폰 3GS를 `2년 약정`에 구입한 회사원 신씨(32). 애플에서 기존 스마트폰보다 여러 기능이 보강된 아이폰4가 7월 중 출시된다는 뉴스를 듣고 고민에 잠겼다.
종전보다 4배 선명해진 화면에 와이파이 영상폰이 지원되고 배터리 시간이 길어졌다니 당장 바꾸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20개월 넘게 남은 약정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신씨가 다음달 중 아이폰4로 휴대폰을 바꾸려면 무려 45만원이 넘는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이런 거금을 내고 휴대폰을 바꾸는 건 어리석다는 생각에 교체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고민은 신씨만이 하는 게 아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회사원 박씨(36)는 옴니아2를 올 초 구입했다가 밀려오는 후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휴대폰이 거기서 거기겠지` 하는 생각에 DMB가 되는 옴니아2를 2년 약정에 샀는데 삼성 갤럭시A, 소니에릭슨 X10, 팬택 시리우스 등 쟁쟁한 스마트폰들이 최근 몇 달 새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달 말에는 갤럭시S, 다음달에는 아이폰4가 나온다니 허탈하다.
휴대전화 가입자들의 상실감과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스마트폰 출시 경쟁이 가열되면서 소비자의 선택 폭이 한층 넓어졌지만 정작 상당수 소비자들은 2년 약정의 굴레에 묶여 발만 동동 구르는 형편이다.
SK텔레콤과 KT에 따르면 최근 휴대폰을 구입한 소비자 중 90% 이상이 2년 약정 요금제를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소비자들의 선택. 70만~90만원에 달하는 고가 휴대폰을 사려면 될수록 의무가입 기간을 늘려 월 분담액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둘째는 이동통신사들이 장기 가입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약정기간이 길수록 보조금 혜택을 더 준다는 점이다.
SK텔레콤의 경우 2500만 가입자 중 2년 약정 고객은 68%(1700만명)에 달한다. 무약정 고객이 27%, 나머지는 12~18개월 가입자들이다. 2년 약정 요금제를 2008년 4월에 가장 먼저 선보인 KT는 2년 약정 고객 비중이 85.5%(1325만명)로 더욱 높다. LG텔레콤도 500만명에 달하는 2년 약정 고객을 보유 중이다. 2년 약정을 택한 사람이 국내에 3520만여 명에 달하는 셈이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소비자나 통신사 모두 2년 약정 조건은 괜찮은 선택이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첨단 스마트폰의 교체 주기가 매우 짧아졌다는 얘기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스마트폰만 해도 옴니아1(2008년 11월)이 옴니아2(2009년 10월)로 가는 데 1년 정도 걸렸지만 갤럭시A가 올 4월 하순에 나온 데 이어 6월 말이면 갤럭시S가 출시되니 신제품 교체 주기가 불과 두 달인 셈이다. 아이폰도 3GS와 아이폰4의 교체 주기가 8개월에 불과하다.
명동 인근 SK텔레콤 대리점 관계자는 "요새 스마트폰을 구입하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 중 대다수가 약정이 상당 기간 남아 있는데 이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느냐고 질문해 온다"고 말했다.
일부 고객은 보상 판매를 신청할 수 없느냐고 묻지만 그런 제도가 없어 난감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통신사와 삼성ㆍLG 등 단말기 제조업체들은 보상판매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통신업체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KT 관계자는 "아이폰 3GS를 가입한 상당수 고객들이 아이폰 충성 고객이자 `얼리 어답터`인데 이들이 2년 약정에 묶여 아이폰4로 갈아타기가 수월하지 못한 점이 신규 모델 흥행에 신경 쓰이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통신업계 일각에서는 1~2년 전에 출시된 휴대폰 가입자들이 어느 휴대폰으로 갈아타느냐가 시장 판도 변화의 중요한 향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매일경제 황인혁 기자 /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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