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 3차 발사 사실상 어렵다

한러간 기술협력 계약, 분쟁 소지 많아

 나로호 3차 발사가 한·러 간 기술협력 계약서에 비춰볼 때 사실상 불투명할 전망이다. 우리 측은 국제적인 우주 기술협력 관행에 비해 발사 실패 시 상대적으로 강력한 계약서상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주장했지만 그 실효성에 분쟁의 소지가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15일 전자신문이 단독 입수한 2004년 당시 ‘한·러 기술협력 계약서’ 한글판 요약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회 발사 중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러시아에 재발사를 요청할 권리가 있으나 러시아가 이를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할 조항은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요약서는 지난 2004년 나로호 개발을 위해 한국과 러시아가 기술협력 계약을 체결하기 직전에 정부 고위 관계자가 확정된 원본 중 핵심적인 계약 항목을 뽑아 정리한 것이다. 지금까지 수정 내용이 없다.

 계약서상 ‘발사 책임’ 조항에 따르면 “발사 실패 시 1회의 무상재발사(Relaunch) 수행 및 계약금의 2% 미지급’을 대전제로 했다. 세부적으로는 ‘한국 측은 1차 또는 2차 발사 실패 시 어느 때라도 재발사 수행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 보유’ ‘한국 측에서 재발사를 원하지 않는 경우 계약금의 5% 미지급’을 명시했다.

 두 조항을 근거로 우리 정부는 지난 10일 2차 발사 직후 3차 발사를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사실상 국제적인 선행 사례에 비춰볼 때 러시아가 우리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을 전망이다. 우리나라가 재발사를 요청할 권리를 명시했지만 러시아가 이를 받아들일 의무를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공우주연구원 측도 그동안 대다수 우주기술 협력 계약서상 ‘실패 시 발사 요구하면 이행해야 한다’는 강제조항이 들어간 사례 자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조광래 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연구본부장은 “위성을 다른 나라의 발사체에 실어 서비스 이용료를 내고 쏘아올릴 때도 실패하면 발사체 회사가 책임을 대부분 지지 않는다”며 “계약서상의 두 조항도 전 세계적으로 선례를 찾기 어려운 이중 보완장치를 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본부장은 또 계약서상 ‘지식재산권’ 항목에서 ‘쌍방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지식재산권을 무상으로 이용 가능한 권리를 허여한다’는 내용도 “국제적 통례상 기술이전 조항을 계약서에 넣는 것이 법에 저촉되는 상황에서 한·러 공동 개발 과정에서 오가는 설계도면 등 지재권 무상 사용 조항을 명시한 보완장치를 넣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항우연의 주장은 다른 나라의 계약보다 보완장치가 많다는 것이나 결과적으로 원천기술을 확보한 우주 선진국이 ‘갑’으로서의 권한 행사가 여전한 셈이다. 수백억원의 비용을 지급하고 유럽·러시아 등의 우주 발사체를 빌리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러시아가 2차 발사 실패에 따른 3차 발사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마지막 장치는 소송이다. 그러나 승소하더라도 위성 개발 등에 필요한 시간을 더해 최소한 3∼4년이 필요하다. 계약서상 ‘분쟁해결 및 적용법’ 조항에 따르면 ‘우호적 분쟁해결 실패 시 제3국인 독일 베를린에서 중재개최,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 규칙 적용’을 하기로 했다. 이 조항에 대해 류광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통상 ICC로 분쟁이 넘어갈 경우 단판 심판이긴 하지만 최소 1∼2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