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위성 송수신기 등의 스위치에 쓰이는 고속소자의 새로운 원천기술을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
염한웅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기존 실리콘 소자에 금속 원자막을 얹어 속도를 20배 이상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17일 밝혔다.
고속 소자는 계면(접합면)에서 전자가 빠르게 이동하도록 만든 트랜지스터 소자의 일종으로 이동통신 등 고주파 통신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소자의 속도는 전자의 유효질량에 의해 결정되는데, 유효질량이 작을수록 전하의 속도가 높아져 질량이 줄어들게 된다. 그동안 유효질량을 외부의 힘으로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기존 핸드폰이나 위성 송수신기 등에는 실리콘보다 유효질량이 훨씬 적은 화합물반도체를 이용해왔다. 우리나라는 화합물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고속소자기술에 대해 원천특허를 전혀 보유하지 못하고 있어 매년 많은 액수의 로열티를 도시바·후지쯔 등 외국기업에 지불하고 있는 실정이다.
염 교수팀은 0.3㎚의 매우 얇은 금속(납)막을 실리콘과 접합시키면 금속의 전자와 실리콘의 전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실리콘 전자의 유효질량이 20분의 1 이하로 줄어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소자 속도는 전자의 질량과 반비례해 20배가 빨라져 화합물반도체보다 높은 속도를 내게 된다. 지금껏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전자 유효질량 변화를 기존 학계에서 전혀 제시되지 않은 새로운 방법을 통해 이뤄낸 셈이다.
이보다 앞서 소자의 속도를 높이는 기술로는 지난 2004년 발견된 탄소단원자막(그래핀)이 있으나 기존 실리콘과는 전혀 다른 공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상용화가 아직 요원한 실정이다. 반면 이번에 개발된 접합 기술은 기존의 공정을 유지하면서도 상용화가 가능하며, 어떤 접합물질을 개발하느냐에 따라 그래핀 이상의 고속 소자 기술로 사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염 교수는 “일반 실리콘으로 고속 소자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면 차세대 고성능 소자 개발 경쟁에서 시장 선점을 노릴 수 있다”며 연구 의의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물리분야 과학 저널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 18일자에 게재되는 한편 국제특허 출원을 준비 중이다. 염 교수는 특허 등록 뒤 관련 기업과 협력해 상용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