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6월 19일, 지금은 부산광역시에 포함된 경남 동래군 장안면 고리. 우리나라 첫 상업용 원자로인 고리원자력 1호기가 첫 임계(臨界, 원자로 점화)에 들어갔다. 1971년 11월 15일 착공된지 5년 7개월만이었다. 이로서 한국은 세계에서는 21번째, 아시아에선 일본·인도·파키스탄에 이어 4번째로 ‘제3의 불’을 점화하는데 성공한 나라가 됐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연구개발은 1962년 3월 19일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원자로 점화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원자로 점화는 원자로를 가동하기 위해 원자로 안에 장전된 핵연료가 지속적인 연쇄반응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이는 원자로가 가동에 돌입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당시 원자로는 100㎾급으로, 연구용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은 한국이 원자력에 대한 독자기술을 가지는 것을 크게 경계했다. 핵무기 확산 우려 때문이다. 당시도 마찬가지여서 고리 1호기를 건설할 무렵 한국은 원전 설계와 건설 기술이 크게 모자랐다. 많은 것을 미국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1호기는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건설해 발전소 소유주인 한국전력에 넘겨주는 턴키 방식으로 건설됐다. 그러나 한전은 원전 운영 경험이 없었기에 웨스팅하우스사가 발전소를 넘겨줘도 제대로 발전할 수 있을 지도 자신할 수 없었다.
특히 본격적인 상업 운전 첫 해인 1978년에는 운전미숙으로 8개월 만에 발전소를 17번이나 정지시켰다. 이듬해에도 13번이나 정지했다. 자주 정지되다 보니 최대 전력 생산 가능량 대비 실제 생산 전력량인 발전소의 이용률도 매우 낮았다. 고리 1호기의 1978년 이용률은 46.3%에 불과했다. 이듬해에는 조금 나아져서 61.3%, 그 다음 해에는 67.4% 등으로 좋아졌다. 운전 정지도 1979년 8번, 1980년에는 7번 하는 식으로 점차 나아졌다.
그 뒤부터 한국의 원자력 기술은 ‘일취월장’ 했다. 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 8기의 원자력발전소를, 10년 후1998년에는 14기, 그리고 다시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모두 20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한다. 연 전력 생산량은 1억8천만㎾에 달한다. 세계 6위 규모다. 원자력발전 경험이 쌓이고 발전소의 숫자가 늘어가면서 발전소 이용률은 90%대에 육박하고 운전 정지도 원전당 연평균 1회 미만에 그친다. 이러한 경쟁력인 요르단, UAE에 이어 터키까지 뻗어나가는 원동력이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자료협조=국립과천과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