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보잉사는 전 세계 10개국 최고의 기술진을 대상으로 한 아웃소싱을 통해 최고급 비행기인 787드림라이너를 개발했다. 고객사들의 반응도 좋아 주문이 잇따랐으나, 공급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출시에만 3년이 소요됐고 이 때문에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보았다.(비노드 싱할 조지아공대 교수)
#사례2 소니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S)의 그래픽 수준은 뛰어나다. 회사는 그래픽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꼈고 지속적으로 개발했지만 고객들은 그래픽은 예전 수준에 만족하고 보다 편리성을 요구했다. 닌텐도 게임기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고객 요구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컨트롤러를 익히는 데는 2∼3주가 소요됐지만, 닌텐도 제품은 2∼3시간이면 가능하다.(요시카와 도모미치 와세다대 교수)
기술경영이 국가간 벽이 허물어진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전자신문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공동 개최한 ‘국제 기술경영 콘퍼런스 2010’에서 기조강연자들을 통해 소개된 사례들이다.
싱할 교수와 요시카와 교수가 기조강연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연구개발(R&D)을 통한 기술이 더 중요해진 시대, 기업에서 기술경영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다. 기술경영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것은 기업의 R&D역량 결집체인 기술을 개발하고 그 결과물인 완성품을 고객에게 최대한 빨리 전달하기 위해서다. 기업의 경영진에게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기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공급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그리고 이에 실패 시 시장에서 그 회사와 기업은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
◇공급망 관점에서의 기술경영=싱할 교수는 특히 기술경영을 부품의 조달과 제품의 공급 관점에서 주목했다. 기술만 뛰어나면 언젠가는 고객이 인정하고 구매할 것이라는 기존 시각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그가 이날 강연에서 공개한 10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공급망 붕괴가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은 기술경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하게 한다. 싱할 교수는 “기업들은 공급망이 중요하다고 인식하면서도 이의 파급효과를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공급망 붕괴가 알려지기 이전부터 그 기업의 주가는 13.68% 하락하고, 이후 발표와 동시에 7.18%, 1년 내에 10.45% 그리고 2년차에 1.77%가 내려간다. 공식화하기 전부터 주가에 반영되고 발표와 동시에 추가하락을 면치 못하는 치명적인 상황에 처한다는 설명이다.
싱할 교수는 “오늘날 공급망 붕괴 가능성은 10년 전부터 훨씬 커졌다”고 경고했다. 기업들은 외부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적극 펼치고 있다. 기술경영의 일환으로 핵심 기술은 내부에서 개발하고 나머지는 외부에서 조달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심지어 해외에서 조달하는 만큼 유통관리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싱할 교수는 “공급망은 날로 글로벌화해지고 있고 복잡해진다”며 “5년에 한 번만이라도 유통망이 붕괴한다며 매번 그 회사의 기업가치는 30∼40% 하락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공급망 붕괴를 막기 위한 기업의 전략은 시스템화다. 부품업체·유통사 등 협력사와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여기에 공급망관리(SCM)와 같은 IT 투자가 요구된다. 붕괴 가능성을 사전 진단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과거의 경험에 대한 사전 증상을 확인하고 이를 숙지해야 한다. 이와 함께 공급망 관리 전담인력을 두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사고 횟수가 적어 유명무실한 공항 내 소방차와 마찬가지로 만약에 대비해, 공급망 붕괴를 위한 전담인력을 두는 것이다.
◇기술경영과 기업혁신=기술경영은 기업의 보다 빠르고 정확한 혁신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다. 기술 급변시대 기업입장에서는 적기에 그리고 고객이 원하는 기술을 찾아 적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혁신이다. 그 결과는 고객에게 어필하고 이는 동시에 기업에 큰 수익으로 돌아온다. 기술이 빠르게 변화한다는 것은 오늘 신기술이 내일 옛기술이 된다는 의미다. 하나의 혁신적인 기술개발만으로 수년을 버틸 수 있는 시대도 지났다. 하나의 혁신기술로 버티기 위해서는 프로세스 개선을 통한 가격 인하가 방법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해법은 제품의 지속적 혁신이다. 고객이 기존 유사한 제품과 비교해 두세 배의 값을 치르고도 기꺼이 살 수 있는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 요시카와 교수는 한국 만도가 개발한 김치냉장고 딤채를 예로 들며 “혁신이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줘야 한다”며 “이를 위해 고객이 어떤 애로를 겪고 있는지를 찾아내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혁신”이라고 말했다.
요시카와 교수는 혁신 추구 과정에서 보유한 기술에 대한 만족감에 빠지는 것을 경계할 것을 강조했다. 소니가 고객이 충분히 만족감을 표한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의 그래픽 기능처럼 한 부문에만 집중하다 보면 큰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부품의 표준화·모듈화 필요성도 요구됐다. 기업이 한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고 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신제품 출시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제품 주기를 빠르게 회전해야 한다는 것. 애플이 아이팟 부품을 모듈화해 6개월 정도를 주기로 신제품을 내놓은 것을 좋은 사례로 요시카와 교수는 들었다. 요시카와 교수는 “R&D 중심의 신생기업들은 기술 디자인만 할 뿐 생산에 주력하지 않는다. 이는 짧은 시간 내에 경쟁사가 비슷한 제품을 내놓기 때문으로 그럴 경우 R&D 비용을 충당하기 힘들어진다”며 “가격을 내려 출혈경쟁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더 빨리 새로운 제품을 내놓음으로써 따돌린다”고 설명했다. 오늘 1위 기업이 내일 2위로 내려갈 수 있는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의 모습이다. 대기업이든 중소벤처기업이든 지속적인 혁신이 요구되며 이를 위해 기술경영을 적극 채택해야 하는 이유다.
김준배·황태호기자 j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