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메탄 등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한 기후변화협약 체결 등 국제적 노력을 진행 중이다.
정보통신(ICT)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ICT 분야의 탄소배출량 중 30% 내외를 차지하는 통신 인프라·기기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분야보다 높다.
전문가들은 네트워크를 더 이상 단순 통신을 위한 인프라나 기기의 범주에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공통된 의견을 제시한다. ICT 제품·서비스가 생활에 널리 보급되고 다양한 산업에 적용되면서 이를 활용한 온실가스 감축 방안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는 네트워크 이상’이라는 표현은 이 같은 변화를 잘 반영한다. 특히 환경을 감안한 그린 네트워크 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에서는 더 가치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 같은 시장 변화는 국내 네트워크 장비산업에 위기이자 기회다.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그린네트워크 기술은 온실가스 감축 관련 각종 규제와 요구에 부응함은 물론이고 기존 장비를 에너지 고효율 장비로 대체하는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연 4% 내외의 성장률로 정체 상태인 기존 네트워크 장비 시장에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제공할 전망이다.
하지만 중소형 스위치·라우터 및 전송장비 위주로 연명해온 국내 장비산업이 향후 에너지 효율 요구를 충족하지 못해 아예 고사할 수 있다는 전망도 서슴지 않는다. 새로운 변화에 맞춘 범국가적인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린네트워크는 ICT 제품·서비스 자체의 탄소배출량 감축은 물론이고 ICT를 활용한 다른 산업의 탄소배출량 감축 등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게 전 세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1992년 UN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이후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며, 지난해 12월에는 ‘국제사회의 가장 광범위한 기후변화협약’(포스트 교토협약) 추진을 논의하기 위한 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개최됐다.
ICT산업 자체의 탄소배출 감축은 물론이고 ICT를 활용한 다른 산업의 탄소배출을 줄임으로써 그린 ICT 실현을 추구하는 GeSI, ETSI TC-EE, 그린그리드 등의 국제협의체가 다수 발족되었다. 또 GeSI, EPA, NTIS, EC 등에서는 에너지 소비 전망 및 그린 ICT의 가능성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국제민간표준화단체인 ATIS에서는 통신장비(서버·전송·라우터·스위치 등)의 에너지 효율 측정 평가방법 표준을 개발 중이며, 서버 및 전송장비의 표준안을 완성해 지난해 ITU-T FG ICT&CC에 제안했다.
글로벌 e지속가능성 이니셔티브(GeSI) 보고서에 따르면 ICT 전체의 탄소배출량은 2002년 0.53GtCO?e, 2007년 0.83GtCO?e, 2020년 1.43GtCO?e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ICT 전체의 탄소배출량에서 구성요소별 비중이 급증하는 통신 인프라·기기, 특히 모바일 네트워크와 유선 광대역의 증가 부문에서 필요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이에 따라 최근 에너지 고효율 네트워크 장비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관련 기술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폭발적 성장으로 인해 전체 통신 분야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관련 기술 개발에는 소홀했던 유무선 네트워크 부문에서의 변화가 눈에 띈다.
최근 버라이즌 등 통신사업자는 성능 대비 에너지 효율 평가기준을 만들고 이에 부합되는 장비만을 납품받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시스코·주니퍼·알카텔-루슨트 등 글로벌 기업들은 아키텍처, 저전력 ASIC, 전력제어 소프트웨어, 패킷-광 통합, 광스위칭 등 다차원적인 연구를 통해 에너지 고효율 통신장비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들은 통신장비 성능 및 에너지 효율 평가지표를 개발하고, 자사 장비·솔루션의 에너지 효율 데이터를 제시함으로써 우수성도 홍보하고 있다.
2008년 인스탯 조사보고서에서 상용 24 및 48포트 기가비트이더넷(GE) 스위치의 와트당 패브릭 용량을 비교한 결과, 스리콤(현 HP) 제품이 3.25 /W 및 2.0 /W로 가장 우수하다고 소개됐다. 시스코·익스트림네트웍스·디링크 등 경쟁사와의 차별화를 위해 에너지 고효율 스위치 기술 개발에 주력한 결과다.
에너지 병목현상에 의한 전자회로 기반의 라우터의 성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저전력 고속 퍼-패킷 라우팅(per-packet routing)이 가능한 광 스위칭에 관한 연구도 한창이다.
시스코·스리콤·인텔 등의 기업과 버클리·사우스플로리다·포틀랜드·워싱턴대학 등의 연구소에서는 활용률에 기초해 링크의 온오프 및 작동 클록을 제어하거나 호스트 디바이스의 작동을 제어함으로써 전력 낭비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액세스 네트워크 제어 기술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2007년부터 IEEE 802.3az TF에서는 이더넷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PHY,MAC 및 프로토콜 기술표준을 개발하고 있다.
시스코는 탄소배출을 10% 이상 줄일 수 있는 텔레프레즌스, 저전력 데이터센터 구현을 위한 넥서스 기술 등을 개발해 제품을 출시했다.
전 세계가 저전력 프로세서, ASIC, 전원공급장치 등 부품에서부터 네트워크 구조, 프로토콜, 제어 및 관리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첨단 그린 네트워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업체들은 온실가스 배출 관련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기존 장비의 대체 수요에 따른 장비 시장에서의 생존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네트워크산업은 발전은 고사하고 퇴보하는 상황이다. 한국적 해결 방안을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국책 연구개발(R&D)사업을 통해 네트워크 인프라·기기·서비스 전반에 걸친 에너지 효율화 전략을 수립하고 에너지 고효율 네트워크 핵심 기술 및 장비 상용화 개발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의 BcN PD실 현종웅 박사는 “그린 네트워크라는 글로벌 시장의 변화에 맞춰 국내 네트워크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장비제조업체 및 통신사업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과제 발굴 등 산학연 총괄적인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