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루 레거시는 왜건이 더 유명하다. 정확히 말하면 왜건 때문에 뜬 케이스다. 90년대 초반 일본에서 멋 부린 왜건의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 레거시 왜건이다. 물론 일본 이외의 지역에서는 세단이 주력이긴 하다. 국내에도 당연히 세단만 들어왔다.
한국시장에 상륙한 레거시는 2.5리터 4기통과 6기통 3.6리터 가솔린엔진을 쓴다. 3.6리터는 스바루 엔진 중 가장 큰 배기량이다. 경쟁을 위해서 차체가 커지면서 엔진도 같이 커졌다. 이전의 레거시가 콤팩트하고 날카로웠다면 지금은 중후하게 보인다.
실내는 우드와 메탈 장식을 혼용해 마감했다. 전반적인 마무리가 같은 회사의 포레스터보다 한결 나아 보인다. 포레스터와 함께 쓰는 올인원 내비게이션은 오디오, MP3, DMB, 다이어리 같은 여러 기능들을 포함하고 있다. 화질도 상당히 좋다. 모니터 바로 밑에는 손이 쑥 들어갈 정도로 깊은 수납함이 있다. 기어 레버는 길이가 상당히 짧은 게 특징이다. 레버를 D에서 왼쪽으로 젖히면 수동 변속모드가 되는데, 수동 조작은 운전대의 변속 패들로만 가능하다. 주차브레이크는 전자식. 앞좌석은 동반석까지 모두 전동으로 조절되고 등받이의 쿠션이 강조돼 등을 탄탄하게 받쳐준다. 뒷좌석은 상당히 넓다. 대신 별다른 편의장비는 없다.
레거시 3.6에는 수평대향 6기통 엔진과 5단 자동변속기가 쓰인다. 최고출력은 260마력, 최대 토크는 34.2㎏.m으로, 수준급이다. 공회전시 진동이 거의 없고 정숙성도 좋다. 가속은 초반부터 시원스럽다. 저속 토크도 좋지만 중간 영역 대에서의 반응이 샤프하다. 거기다 고회전에서도 끈질기게 힘을 뽑아낸다. 제원상 수치도 빠르지만 체감 가속은 더 빠르다. 그리고 100㎞/h 이상의 속도에서도 가속력 저하의 정도가 덜하다. 100㎞/h에서의 회전수는 2000vpm 정도로 낮다. 5단 변속기는 기대 보다 성능이 우수하다. 주행 또는 정차 시 변속 충격이 적고 엔진의 동력을 충실하게 전달한다. 기어를 내릴 때는 반응이 아주 신속하고 엔진의 회전수 보상 기능이 있어 매끄럽게 동작한다.
고속에서의 자세는 흠 잡을 데가 없다. 바퀴가 탄탄하게 노면을 지지하는 느낌. 본래 차체의 좌우 쏠림이 다소 있는 편인 것을 감안하면 고속 안정성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타이어 제품 자체의 성격은 고속 주행을 지원하기에 부족해 보인다. 핸들링은 포레스터와 흡사한 특성을 가졌다. 플랫폼과 4륜 구동 시스템이 같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코너에 빠르게 진입하면 좌우로 쏠리면서도 잘 돌아나가는 것이 다소 신기하다.
주어진 타이어의 그립을 끝까지 사용하면서 4륜 구동 시스템이 차체 중심을 잡아낸다. 비포장도로에서 더 재미있게 탈 수 있는 것은 랠리 경기에서 갈고 닦은 스바루의 DNA인가 보다. 차체의 움직임은 제동할 때도 마찬가지다. 차체가 앞뒤로 흔들리는 피칭 현상이 꽤 큰 편인데, 제동력 자체는 상당히 좋고 차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일정하게 발휘된다. 반응도 빠르다.
레거시는 스바루의 차 만들기에 대한 전력이 잘 나타나 있는 모델이다. 대중 브랜드의 자동차치고는 개성이 강하다. 대게 이 급의 차는 누구에게나 어필 할 수 있는 성격을 지향하지만, 레거시는 조금 다르다. 외모만 보고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겉모습만 보면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랜 기간 숙성된 기술력이 레거시를 차별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