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열증을 앓은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일대기를 그리 영화 ‘뷰티풀마인드’의 한 장면.](https://img.etnews.com/photonews/1006/100624051631_1788763034_b.jpg)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약간의 광기도 없는 천재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또 로마의 세네카도 “광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천재는 없다”고 말했다. 일상적인 생활방식에 젖어 있는 보통 사람 눈에 천재의 행동은 특이하고 괴상해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천재라고 인정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도, 영화 ‘뷰티풀 마인드’로 유명한 수학자 존 내쉬도 정신분열증을 앓았다. 모차르트,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등 천재 음악가들은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천재에게 정신질환은 숙명일까.
지난 17일 미국 공공과학도서관 온라인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에는 “창의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과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에게서 공통적인 특성이 드러났다”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다. 스웨덴-미국 합동 연구팀은 피실험자를 정신병자·보통사람·굉장히 창의적인 사람 등 3개 그룹으로 나눠 ‘창의성 평가 테스트’를 실시하는 동시에,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 기법으로 뇌를 세밀히 촬영했다. 그 결과,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 이미지가 정신질환으로 고생한 사람들과 비슷한 것으로 드러났다.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프레데릭 울렌 교수는 “뇌속 도파민 D2 수용체가 정신분열증을 앓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것과 유사했다”고 밝혔다.
도파민은 뇌에서 작용하는 신경전달물질로, D1과 D2 등 특정 수용체와 결합해 약물중독과 정신질환 등을 일으킨다. 특히 D2 도파민 수용체는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때문에 정신분열증 치료제로는 D2 수용체에 도파민이 결합되지 못하도록 막는 차단물질이 쓰여 왔다. 연구결과의 핵심은 도파민 수용체의 밀도에 있다. 높은 수준의 창의성을 지닌 사람은 정신병을 앓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뇌의 시상 부위의 수용체 밀도가 낮았다. 이는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뇌 상태와 유사하다.
시상은 각종 감각정보를 적절히 조절해 대뇌피질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도파민 수용체가 적으면 정보를 걸러내지 못해 대뇌가 훨씬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해야 한다. 결국 천재가 미치광이의 이면을 지니는 것은 의학적으로 숙명에 가깝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정신병자와 천재는 다르다. 대뇌에 흐르는 감당할 수 없는 양의 데이터를 좀 더 아름답고 창의적인 걸작을 탄생시키는 자원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천재다.
‘누구나 창의성을 가지고 있다’의 저자 장 코트로 교수는 “광기라는 것은 천재성이라는 예외적인 운명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며 “창의성은 독특한 행동으로 인류의 진화를 이끌어 왔다”고 광기 어린 천재에 대한 옹호론을 말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자료협조=한국과학창의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