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수요관리 트렌드로 자리잡는 ‘EERS’

미국에서는 대규모 정전사태가 자주 일어나면서 통합수요관리를 실시하는 주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8년 대규모 정전사태로 400만명이 피해를 입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미국에서는 대규모 정전사태가 자주 일어나면서 통합수요관리를 실시하는 주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8년 대규모 정전사태로 400만명이 피해를 입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해외에서 수요관리는 크게 부하관리와 효율향상으로 나뉜다. 부하관리는 시장기능에 맡기고 효율향상은 정부가 계속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세계 각국은 저마다 다른 전력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부하관리만큼은 한 결 같이 수요반응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수요반응(Demand Response)이란 소비자들의 전력 소비 습관을 바꿔 전력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시간마다 다른 요금제나 인센티브 등을 통해 소비자들이 특정 시간대에 전력소비를 줄이거나 소비시간 변경, 분산전원 이용 등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과거 부하관리가 공급 측 위주의 단방향 수요관리였다면 수요반응은 소비자의 선택과 편익을 고려한 양방향 수요관리 프로그램인 것이다.

 경쟁적 전력시장이 도입된 미국(뉴욕·뉴잉글랜드·캘리포니아)과 호주 등에서는 주로 인센티브나 요금 기반 수요반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독점시장인 미국 조지아주에서는 조지아 전력회사가 시간별로 전기요금이 다른 차등요금제(피크요금제, 실시간요금제 등)를 다양한 형태로 서비스하고 있어 수요반응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넓은 의미의 인센티브 기반 수요반응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으나 요금제기반 수요반응 프로그램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수요관리가 전력문제에 대한 소극적 대처라면 효율향상은 보다 적극적 대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선진국에서는 에너지공급자 효율향상 의무제도(EERS: Energy Efficiency Resource Standard) 정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미국 일부 주와 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에서 수요관리 강화를 위해 에너지공급자에게 에너지 절감목표를 부여함으로써 소비자의 에너지이용 효율을 높이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절감목표는 대부분 에너지판매량의 일정비율로 지정되며, 보통 연간 판매량의 1% 수준에서 결정된다.

 EERS를 처음 도입한 곳은 미국 텍사스주다. 텍사스주 공익사업위원회는 지난 2001년 전력 공급업체들에게 전력수요 증가량의 일부를 상쇄하도록 의무화하고 그 첫 단계로 2002년 예상수요 증가량의 5%를 절감하도록 했다. 2003년부터는 이 수치를 10%로 높였다. 텍사스주는 표준공급가격과 시장전환 프로그램도 처음 도입했으며 현재 EERS와 관련해 모두 8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 EERS를 진지하게 실시하고 있는 또 다른 곳은 캘리포니아주다. 2001년 전력위기사태 이후 EERS를 통해 에너지 공급자들이 공급 측과 수요 측 자원을 모두 포함하는 에너지 수요를 만족시키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연간 절감목표량은 2013년까지 10%나 된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예상 판매량과 실제 판매량 간의 차이를 조정하기 위해 전기요금을 매년 조정하는 ‘디커플링(Decoupling)’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디커플링 제도란 판매량이 예상보다 적을 때는 전력 요금을 인상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요금을 인하해 에너지공급자가 최소한 적자를 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다.

 영국은 2001년 미국의 EERS와 동일한 에너지효율공약(EEC: Energy Efficiency Commitment)을 제정해 전력 및 가스 공급업체들에게 주택용 에너지효율향상 목표를 달성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에너지 공급업체들은 매 분기 절감결과를 가스전력시장 관리청(OFGEM)에 보고하고, OFGEM은 이를 정기적으로 진단하며 샘플 주택조사를 실시해 시행효과를 확인하고 있다. 이를 통해 첫 번째 EEC 시행기간인 2002년부터 2005년 사이에 당초 목표인 620㎾h보다 40% 가까이 많은 870㎾h의 전력을 절감하는 실적을 거뒀다.

 프랑스도 2005년 에너지법을 개정해 전기와 천연가스, 가정용 연료, 낸난방 공급자를 대상으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프랑스 에너지 사용량의 1%를 절감하도록 의무를 부여했다. 이들 에너지 공급업체들은 직접 에너지효율향상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도 있지만, 고객들이 효율을 높이도록 돕거나 필요한 절감량 만큼 백색증서(White Certificate)를 구입할 수도 있다. 프랑스 정부는 백색증서 판매가격과 증서판매자 리스트를 발행해 백색증서 거래시장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이밖에 미국 네바다주와 이탈리아가 2005년부터 이 제도를 시작하는 등 EERS가 수요관리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