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질 듯하던 남유럽발 재정위기가 쉽사리 진정되지 않고 있다. 그리스가 세계 경제에서 가지는 경제적 위치를 볼 때 재정위기는 지엽적인 불안에 그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리스뿐 아니라 스페인,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으로 위기가 번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유로존에 묶여 있는 국가들이 흔들리면서 아직은 견고한 타 유럽 국가로 위기 전파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유럽의 고전 속에 미국,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의 경제 회복이 다소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다시 한번 위기가 도래하는 것 아니냐는 공포심이 일고 있다. 매일경제신문과 LG경제연구원은 최근 위기에 대한 시나리오를 분석했다. 유럽을 둘러싼 정치ㆍ경제적 변수를 기반으로 위기 확산의 가능성을 판별하고 전 세계 국가의 향후 경제 전망을 반영해 한국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위기의 여파 수준을 분석했다.
◆ 최악의 경우 전 세계 `더블딥`
= 최근 상황을 보면 비관적인 전망에 다소 무게가 실린다. 유럽중앙은행(ECB)은 1년 전 유로존 은행들에 공급한 4420억유로를 더 이상 연장하지 않고 7월 1일부로 회수하기로 했다. 그리스, 스페인 등 신용 경색이 염려되는 국가에는 직격탄이 될 수 있는 조치다. 이로 인해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던 `7월 위기설`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확산되고 있다.
그리스ㆍ스페인의 재정 감축 역시 내부적인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노동계를 중심으로 정부 긴축안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29일 양대 노총이 총파업을 벌이면서 올해 들어 다섯 번째 파업이 이어졌다. 스페인에서도 공공분야 임금 5% 삭감에 반발해 공공노조들의 시위가 거세지고 있다.
만약 유럽 경기가 급락하고 민간 금융회사의 건전성 문제가 지속되는 다소 비관적인 시나리오에서 유럽 경제는 올해 0.2% ,내년 -0.2% 성장이 예상됐다. 일부 국가에서는 `더블딥`이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다.
같은 조건에서 세계 경제는 올해 3.3% 성장이 유지되고 한국 경제 성장은 4.8%에 머물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 수출은 12%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만약 중국, 인도 등 신흥국들의 성장률이 높게 유지된다면 한국 경제 성장률도 다소 상승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쇼크` 수준이다. 유럽발 재정위기로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은 3.7%까지 추락하고 내년에는 마이너스 성장(-1.8%)할 것으로 예상됐다. 내년 수출도 20% 이상 줄어들면서 실물 경제에 타격이 크게 나타날 것으로 전망됐다. 세계 경제도 내년 -2% 성장이 나타나면서 본격적인 더블딥 상황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가능성은 그리 높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리스, 스페인들이 재정적자 감축 계획을 이행하지 못하거나 재정 감축에 의한 경기 급락으로 금융회사가 파산하게 되면 상황은 악화될 수 있다.
게다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개혁이 미진하면 장기적인 국채 상환 능력이 담보되지 않아 민간 부문에서 국채 인수를 거부하거나 보유 국채를 매도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부채가 최소한 2012년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그리스가 높은 국채 이자율을 감당하지 못해 채무 재조정을 선언한다면 구제금융 계획까지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구제금융의 손실을 타 국가들이 떠안거나 규모가 예상보다 커지면 지원국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거세질 수 있다.
◆ 미국ㆍ중국의 경기 회복이 관건
= 최근 상황이 다소 악화되면서 비관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낙관적인 전망의 가능성이 높다. 이는 현재 유럽의 위기 극복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전제하에서다.
유럽의 위기 극복이 표면적으로 나타나고 전 세계 경기도 회복의 추진력을 받는다면 세계 경제는 올해 4% 성장하고 한국도 5.8%의 성장이 예상된다.
이런 예상에는 유로지역에서 재정 적자 감축에 따른 수요 부족을 유로화 약세를 통한 수출 증대로 어느 정도 상쇄한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유로 외의 경제가 재정위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은 채 회복을 지속하고 출구전략이 적시에 이뤄진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가장 낙관적인 경우 2010년 세계 경제는 4.8% 고성장을 지속하고 한국은 6.2%의 견고한 성장세가 전망된다. 이는 여러 가지 변수가 톱니바퀴 맞물리듯 순조롭게 진행돼야 가능한 상황이다.
유럽이 재정 긴축으로 견고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미국이 과거의 패턴대로 부채 누적을 통해서 세계 경제를 이끌어간다는 전제하에서다. 게다가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새롭게 떠오르는 경제의 축에서 내수 중심의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
◆ 한국, 유럽을 `반면교사`로
= 올 상반기 예상보다 빠른 회복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에서도 최대 6% 가까운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분석에 따르면 유럽 변수가 한국 경제의 암초가 될 수 있다.
이미 시장에서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금리 인상 시점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2008년과 같은 상황이 또다시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정부의 재정 건전성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가 재정 관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외부 변수의 위험이 수그러들지 않은 시점에서 `성장의 모멘텀`을 해치는 지나친 긴축은 다소 위험할 수 있다.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0%가 넘지 않아 OECD 국가 중에서도 건전성이 가장 양호한 국가로 꼽힌다.
국가채무비율이 100%를 넘어가는 일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상황 변화에 따라 재정 관리를 긴축으로만 방향을 설정하기보다 탄력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이번 분석에서는 대외 변수에 취약한 한국 경제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내수 성장`이라는 공허한 외침이 한국 경제의 위험도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서비스업 발전을 통한 내수 성장이 계속 지지부진하다면 번번이 해외 충격에 고전하는 한국 경제의 모습은 되풀이될 것이다.
[매일경제 특별취재팀=정혁훈ㆍ김병호ㆍ한예경ㆍ안정훈 기자, LG경제연구원 이창선 금융연구실장, 배민근 책임연구원, 정성태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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