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단계 프로젝트를 완료한 현대중공업의 제품수명주기관리(PLM) 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과의 ‘감쪽같은’ 연계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사용자는 PLM 시스템을 사용하는지, ERP 시스템을 사용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개발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삼성SDI 등 최근 공급망관리(SCM) 혹은 PLM 프로젝트를 추진하거나 고도화하는 많은 제조업체의 이슈도 바로 SCM 시스템과 PLM 시스템, 그리고 ERP 시스템의 정보 연계다. 이는 ‘프로세스’를 중심으로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이 마치 하나의 시스템처럼 활용되면서, 사용자가 ERP 시스템과 SCM 시스템에 각기 들어가지 않아도 필요한 모든 정보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최근 LG전자가 개발하고 있는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 시스템 ‘마이윈도(My Window)’도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만 볼 수 있는 개인용 화면을 제공하면서 ‘어떤 시스템’을 사용하는지도 모르도록 했다.
이 같은 기업들의 동향을 꿰뚫어보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을 풍미해 온 ERP 시스템, 그리고 그 후속타로 주목받아 온 SCM 시스템 등 다양한 기업용 애플리케이션들이 저마다 전문성을 필두로 경합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느낀다. ‘차세대’ 애플리케이션 시대는 애플리케이션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사용자 중심 통합 모델이다. 기능은 남되 이름은 사라지고, 정보는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는 적합한 애플리케이션의 부재 현상이다. 이를 깨달은 관련 시스템 업체들도 특정 애플리케이션으로 그 영역을 완벽하게 통달할 수 있다는 식의 전문성 강조 마케팅보다 통합 모델을 출시하며 앞다퉈 ‘경계 허물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통합과 연동만큼은 ‘프로세스’를 잘 알고 있는 사용자들이, 기능에 강한 시스템 업체들보다 한발 앞서 있다. 시스템에 탑재된 ‘월드 클래스 베스트 프렉티스’를 권유하고 수정하기를 원치 않는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업체들이 봉착한 한계이기도 하다.
많은 사용자들이 자체 개발로 선회하거나 제품을 교체하면서 벤더의 솔루션과 사용자 프로세스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PLM 시스템을 검토하던 삼성전자가 70%만 충족해도 패키지를 도입하려 했지만 결국 30%선에 머무는 것으로 판단해 자체 개발로 선회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봄 CIO BIZ+가 100명의 최고정보책임자(CIO)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많은 CIO가 경영진으로부터 ‘비용 효율’보다 ‘비즈니스 프로세스 개선’을 최우선적으로 요구받고 있다고 답한 것과 상통한다. 비용 효율을 강조하는 ‘클라우드’ 등 기술적 영역보다는 새로운 프로세스를 개발해 기업을 뛰어넘는 개방성을 갖추는 일이 더 시급하다. 한 기업의 변화무쌍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세스가 시스템 업체들이 주장하는, 10년 전부터 교과서처럼 적용돼 온 ‘베스트 프랙티스’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PLM, SCM, ERP 등 최근 수 십년을 익숙하게 사용돼온 용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 2010년 이후 차세대 애플리케이션 시대는 ‘맞춤형 프랙티스’가 더 어울리는 시대일지 모른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