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도 다리 하나가 짧으면 기울어지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나라 과학이 그런 형국입니다. 기초과학·순수이론과학 연구에 대한 지원 정도가 다른 분야에 비해 지나치게 뒤처져 있어요.”
지난 1일 취임한 김두철 신임 고등과학원장은 5일 전자신문과 인터뷰에서 응용·제조 분야에 비해 기초·순수이론 연구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크게 모자란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미국 뉴욕대학교 물리학과 연구원을 시작으로 서울대 물리학부 학부장까지 30년이 넘게 기초과학 연구에 매진했다.
김 원장이 꼽는 기초과학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응용 연구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사회문화의 문제다.
“기초과학이나 순수이론은 상용화의 짐을 벗고 연구하지만 결국 그 결과가 응용 연구의 기반이 됩니다. 또 하나는 문화로서의 기초과학입니다. 기초과학 발달은 그 사회 구성원에게 ‘합리성’이라는 중요한 문화적 기반을 선물합니다.”
고등과학원은 1996년 설립된 순수 이론 기초과학 연구기관으로 아인슈타인이 첫 교수로 지냈던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가 모델이다. 1930년 설립된 이 연구소는 노벨상 22개,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 34개를 배출했다.
김 원장도 기초연구기관의 수장으로 노벨상에 대해 관심이 많다. 하지만 노벨상 배출은 반드시 ‘한국 국적의 국내 박사 출신’일 필요는 없다는 지론이다. 김 원장은 “어느 기관에서 연구한 성과로 노벨상을 타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수상자의 국적이나 출신이 그 국가의 과학기술 발전 수준을 대변해 주지 않는다”며 “노벨상을 위해서도 국제화의 관점이 필요한 것”이라 말했다.
그의 생각에 기초과학·순수이론 연구에 대한 지원은 어렵지 않다. 거대한 인프라가 필요한 분야가 아니기 때문. 김 원장은 “이론과학은 연구를 잘 할 수 있는 환경만 있으면 된다”며 “행정적인 면에서 시간·비용 낭비만 줄여도 크게 나아질 것”이라 설명했다.
김 원장은 국내 이공계 교육에도 쓴소리를 던졌다. “많은 중학생들이 과학에 흥미를 가지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는 달라진다. 기초과학을 하면 먹고살기 어렵다는 오해가 팽배하기 때문”이라며 “과학 교육 현장에서 기초과학을 해도 충분히 고귀한 인생을 누릴 수 있다는 현실을 인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처음 고등과학원에 발을 들였지만 자부심도 상당하다. 국내 연구자들은 박사학위 취득 후 가장 가고 싶은 연구기관으로 고등과학원을 꼽는다. 김 원장은 고등과학원의 강점을 세 가지로 꼽았다.
그는 “기초과학·순수이론 분야에서 어느 기관보다 선도적인 연구를 하고 있고, 여기서 배출된 인력이 곳곳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며 “독일 프라이버그 대학교, 베트남의 VAST 등 해외 대학과 연구소에서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자랑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