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IC카드로 바꿨지만 사용못해

신용카드가 마그네틱카드에서 집적회로(IC)가 내장된 카드로 100% 가까이 바뀌었지만 IC카드용 단말기 보급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해 현장을 무시한 정책으로 사회적 낭비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이 위.변조를 막고자 신용카드를 IC카드로 바꾸도록 유도했지만 정작 사용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책을 추진해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는 지적도 있다.

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말 기준으로 신용카드의 IC카드 보급률은 96%에 달했다. 최근 6개월간 사용실적이 있는 카드는 IC카드가 100%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가맹점 내 IC카드용 단말기 보급률은 23%에 그쳤다. 금감원은 카드 복제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자 2003년 모든 신용카드를 위.변조가 어려운 IC카드로 2008년말까지 교체하고 IC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카드사들은 순수 마그네틱카드 발급을 중단하고 IC칩이 내장된 카드를 수천만장 찍어냈다. 뒷면에는 기존의 마그네틱 바가 있고 앞면에 IC칩이 내장된 형태다.

하지만 카드사들이 IC카드를 발급하는 동안 가맹점에 IC카드용 단말기가 보급되지 못해 자칫 반쪽짜리 카드가 될 상황에 처해있다. 고객들이 기존의 마그네틱 결제 방식에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자 가맹점들이 대당 18만원 정도 드는 IC카드용 단말기 설치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단말기 공급업체인 부가통신망(VAN) 업체나 카드사도 단말기 설치는 가맹점이 결정할 일이라는 태도를 보이며 서로 단말기 설치를 미루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도 단말기 설치를 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 전체 가맹점에 IC카드용 단말기를 모두 설치하려면 2천억∼3천억원 정도 필요한 것으로 금감원은 추정하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단말기 인프라가 갖춰져야 할 텐데 결국 누가 돈을 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신용카드를 IC카드로 바꿔 카드의 위.변조를 막겠다는 본래의 목적도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카드만 교체한다고 위.변조를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카드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처음부터 사용 환경을 살피지 않고 위.변조를 막는다며 카드 전환에만 혈안이 돼 이런 상황이 발생한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 당국도 카드의 위.변조를 막으려고 신용카드를 IC카드로 바꾸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사용 환경이 따라주지 못하자 난감한 분위기다.

카드사, VAN사, 가맹점 등에 단말기 설치를 독려하고는 있으나 현재 상황에서는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이 직접 VAN사를 감독할 수는 없어 카드사를 통해 단말기 설치를 독려하고 있고 종종 카드사, VAN사들과도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데 단말기 설치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면서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