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럭거리는 작은 소리 하나조차 허락하지 않는 숨죽인 공연장. 어둠 속에서 연주자들이 준비를 끝내고 지휘자의 손끝만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 공연장을 에워싼 다섯 대의 3D 카메라가 조심스럽게 녹화에 돌입한다. 뒤편에는 입체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두 대의 카메라를 가로로 결합시킨 수평식 리그(Rig)가 두 대 포진했고 무대 양쪽에 한 대씩 그리고 무대 위편에 또 한 대가 자리잡았다. 이들 카메라는 어둠 속에서 연주자들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라도 놓칠세라 부지런히 돌아간다.
지난 3일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의 공연인 ‘디토 오딧세이’가 열린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스카이라이프의 자회사 스카이HD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체 장비와 중계차를 갖추고 공연을 중계하는 현장이다. 다른 방송사들의 경우, 장비를 임차해서 간헐적으로 3D 중계방송을 제작하지만 이 현장에서는 촬영에서부터 편집에 이르는 ? 과정에 필요한 시스템을 갖추고 진행됐다.
강성욱 스카이HD 제작사업국장은 “지난 6월 진행한 월드컵 행사 중계방송이 전초전이었다면 이번 녹화는 본격적으로 안정화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면서 “국내 3D 콘텐츠 제작에 중요한 역사를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연장에 설치된 카메라들은 고정돼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에 비해 중계차의 상황은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현장 중계에 여념이 없는 차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냉장실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시원하다. 더위에 시달리는 엔지니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가의 장비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30여대의 모니터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좁은 차 안에는 오디오감독·PD·풀러(puller) 등 6명이 빼곡히 들어앉아 장비 조종에 집중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빨간색·녹색 등으로 수시로 변하는 그래프 앞에서 빠르게 손을 놀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들이 3D 제작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풀러다. 풀러는 3D 콘텐츠를 제작할 때 포커스와 줌 등 미세한 부분을 조종하는 역할을 한다. 넉 대의 루모(Lumo) 모니터를 보면서 휠을 앞뒤로 돌려 화면을 정교하게 맞춘다.
영화나 드라마와 같이 제한된 공간에서 짜여진 콘티대로 진행되는 3D 방송 촬영은 상대적으로 현장에서의 어려움이 적지만, 직접 현장에서 상황을 맞아야 하는 3D 중계 촬영은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특히 초기 단계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총감독을 맡고 있는 김종래 스카이HD 제작사업국 3D사업팀장은 “장비 세팅에만 세 시간 이상 걸린다”면서 “얼마나 세심하게 신경쓰고 있는지 중계차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면도를 안 하거나 손톱을 안 깎는 등 각자 징크스까지 생겼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번 중계와 장비 도입을 위해 몽카이HD에서는 다섯 명의 직원을 미국 3앨러티(3Ality)에 파견해 교육받도록 했다. 3앨러티는 아바타 촬영에도 쓰인 3D 카메라 제작사로 전 세계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 업체다. 5월 말에 장비를 도입한 후 3D 중계차를 제작해 지난 6월 20일 본격 테스트에 돌입했다. 중계차 구성에만 60억원을 쏟아부었다.
천막이 드리워진 중계차 앞편에는 리그의 양쪽 카메라로 촬영된 각각의 영상을 백업하는 아이솔레이션 장비가 늘어서 있다.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눈빛에 국내 3D 방송콘텐츠의 밝뫀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국내 3D 방송 제작 활성화하려면
현재 국내에서 제작되는 3D 방송 콘텐츠는 그 수와 기술적인 품질 면에서 나쁘지 않다는 평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제작된 3D 방송 콘텐츠는 총 20~30시간 분량이지만 올해 말이면 최장 150시간까지 확대, 세계 최대량을 보유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 사람의 급한 성격’이 3D 분야에서도 발휘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국내 업계가 3D 콘텐츠 분야에서 전 세계로 뻗어나갈 기회를 잡을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실제 방송사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훀다. KBS는 지난 5월 대구 육상경기를 3D로 방영하고 다양한 드라마·쇼·다큐멘터리 등을 3D로 제작하는 등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MBC와 SBS 역시 3D 시험방송에 발맞춰 각종 프로그램들을 3D로 만들었다. EBS는 다큐를 중심으로 3D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또 24시간 3D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디지털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 역시 지난달 월드컵 행사를 3D로 중계한 데 이어 7월에는 1회 ‘국제클럽 오픈 태권도 대회’를 비롯해 각종 쇼 등을 3D 방송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재미를 주는 스토리 라인이 부족하다는 것은 문제로 ?적된다. 국내에서 영화 ‘아바타’와 같이 보는 이들을 열광시키는 콘텐츠는 아직 나오지 못했다.
이런 문제의 중심에는 자금 부족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아직 초기단계인 3D 방송 제작 부문에 투자도 부족한 상황이다. 이는 지상파와 독립 제작사, 위성방송 등을 망라해서 3D에 관심을 갖고 있는 방송업계가 모두 겪고 있는 공통된 문제다.
이는 장비 및 기술 도입과도 연관돼 있다. 국내 방송사들은 충분한 3D 카메라 장비를 구비하지 못해 상당 부분 외부 장비를 임차해서 사용 중이다. 특히 하이엔드급의 3D 장비를 구입하기에 관련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고품질의 콘텐츠 제작을 위해서는 고가의 외산장비 구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방송사 관계자는 “현재 3D 제작은 그 예산이 너무 방대해 개별 방송사가 완벽한 장비를 갖추기는 어렵다”면서 “방송사들이 각기 욕심을 낼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서 공동 제작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지원
정부는 국내 3D방송 산업에는 사업자들과 정부의 가치사슬 구축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와 사업자가 협력하는 상생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진흥정책을 개발하는 동시에 관련 시장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한국전파진흥원의 2010년 방송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을 통해 KBS ‘콩고의 열대림’, EBS ‘위대한 바빌론’, 한국HD방송 ‘대륙의 혼, 중국’ 등 총 10편의 3D방송 콘텐츠에 29억원을 지원한다. 단순 제작비 지원뿐 아니라 사업자 간담회 등을 통해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한국형 명품 콘텐츠’ 육성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현장 중심의 실질적인 지원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방통위는 지상파·위성·케이블·IPTV 사업자 등이 참여하는 ‘3D방? 콘텐츠 제작협의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현재 총 4차에 걸쳐 협의회를 진행했으며 이를 통해 3D방송 콘텐츠 산업 현황을 파악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인력양성 전문교육 과정, 제작비 지원 등 체계적인 지원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3D방송 콘텐츠 제작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장비 부족과 3D 시청 안전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했다. 방통위는 3D방송 콘텐츠 제작 활성화를 위해 오는 2012년 완공되는 디지털방송콘텐츠지원센터에 150평형의 3D 전용 스튜디오와 관련 장비를 갖추기로 했다. 3D방송 콘텐츠 제작 활성귈와 함께 3D 관련 인적 인프라 구축을 통한 산업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3D 영상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방송사와 심리학·의료계 전문가들이 포함된 ‘3D 시청 안전성 협의회’를 출범시켰다. 협의회에서는 100여명의 3DTV 방송 체험단을 구성해 시청거리·각도·자세 등 3D 시청 환경 및 개인 특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3D 시청 안전성 확보 방안을 연구한다. 또 다각도에서 3D 시청에 따른 피로감 등 부작용을 관찰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다양한 분야의 협업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표1>국내 방송사 3D 방송콘텐츠 ?작 현황
<표2>2010년 3D 방송콘텐츠제작지원사업 현황(한국전파진흥원, 한국인터넷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