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7년 7월 5일, 영국 학자 아이작 뉴턴의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출판됐다.
‘만유인력’과 뉴턴의 3대 법칙으로 불리는 ‘운동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 ‘관성의 법칙’을 담은 이 책은 과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로 평가받는다. 또 케플러의 행성운동법칙과 중력 이론 사이의 지속성 증명을 통해 지구와 천체 위 물체들의 운동을 규명, ‘천동설’에 대한 마지막 의문점을 제거하고 과학 혁명을 촉발시킨 책이기도 하다.
1642년 영국의 울스룹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뉴턴은 1661년 캠브리지 대학에 입학했다. 그의 어머니는 사별한 남편의 유산을 물려받아 부유했지만 뉴턴의 학비를 아까워했다. 이 때문에 뉴턴은 근로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고, 그나마 대학을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흑사병이 창궐해 학교가 문을 닫았다. 뉴턴은 1665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이듬해까지 2년간이 후세 사람들이 ‘기적의 해’라고 부르는 시기다. 훗날 뉴턴이 이룬 위대한 업적 중 많은 부분이 이 시기에 시작됐다. ‘뉴턴의 사과’와 관련된 일화도 이 시기의 일이다. 1666년 어느 날, 과수원의 사과나무 아래서 졸고 있던 뉴턴의 머리위로 사과가 떨어졌다. 잠에서 깬 뉴턴은 왜 사과가 똑바로 아래로 떨어지는지 의문을 갖게 됐고, 마침내 ‘중력’이라는 힘이 만물에 적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적의 해에 뉴턴은 만유인력 외에도 스물 두개의 문제를 동시에 연구했다. 오늘날 미적분이라고 불리며 고급수학의 기초가 되는 계산법인 ‘유율법’도 이 시기 뉴턴에 의해 만들어졌다. 또 프리즘을 통해 당시의 ‘빛은 흰색’이라는 믿음을 깨고 다양한 색으로 구성돼 있음을 입증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스물네다섯살이었다.
이처럼 뛰어난 성과를 거둔 뉴턴이지만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신의 연구 결과가 도용당하거나 비판당할거라는 두려움이었다. ‘미적분 우선권 논쟁’이라 불리는 독일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와의 분쟁은 그에게 ‘과학 독재자’라는 불명예스런 수식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뉴턴은 아직까지도 최고의 과학자이자 수학자, 광학자이자 철학자로 추앙받는다. 그는 “만약 내가 다른 이들보다 더 멀리 볼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입니다”라는 유명한 문장을 남겼는데, 그 당시부터 그가 바로 거인이었다.
·자료협조=국립과천과학관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