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캡션, 미국의 SID 전시회(사진1), 일본의 ‘FPD인터내셔널(사진2)’, 대만의 ‘FPD타이완’, 중국의 ‘FPD차이나’ 등 디스플레이 강국은 디스플레이 전문 전시회를 독자적으로 개최해 기술교류와 마케팅에 활용한다. 우리나라는 IMID라는 디스플레이 전문 전시회 및 학술대회를 한국전자전과 통합해 개최함으로써 디스플레이 최강국 위상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5월 8일부터 열흘 동안 중국 선전에서 개최된 디스플레이 전문전시회인 ‘CODE2010’. TCL·창훙·스카이워스·캉자 등 중국의 TV업체는 국내 기업 TV와 외양이 거의 흡사한 LED TV를 대거 전시하면서 이제 LCD TV 등과 같은 고급가전제품에서도 한국기업과 경쟁에 들어갈 것을 예고했다.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TCL 부스 옆에 마련된 차이나스타(CSOT) 전시관이었다. TCL과 선전시 소유의 ‘선차오기술투자유한공사’가 50 대 50 지분율로 합작한 CSOT는 내년 4분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CSOT 부스에는 공장 축소 모형과 함께 중국에서 자체적으로 8세대 라인을 구축해 명실상부한 디스플레이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홍보문구가 중국 관람객들의 자부심을 유도했다. 최근 CSOT를 방문한 한 장비업체 사장은 “CSOT에는 수백명에 이르는 대만의 LCD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한국 엔지니어들의 모습도 보였다”며 “초기 생산에서는 어려움을 겪겠지만 2년 정도 지나면 안정되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세계 LCD 시장을 주도해온 국내 기업들은 앞으로 2년 이내에 중국이라는 새로운 도전자를 맞게 된다. 한국·일본·대만 3국 경쟁 체제에서 중국의 가세로 동북아 4국 경쟁 체제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중국기업들의 위협은 이제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비오이와 CEC판다가 올해부터 6세대를 가동한다. 비오이는 2011년에는 8세대 라인까지 가동할 예정이며 CEC판다는 샤프와의 제휴를 통해 8세대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지난 2000년대 중반 5세대 공장을 지었다가 공급과잉과 기술력 격차로 큰 손해를 봤던 중국 기업들이 다시 LCD 시장에 과감히 뛰어드는 이유는 세계 최대의 내수 시장이 보장돼 있는데다가 LCD의 차세대 라인 기술포화 등으로 기회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비오이나 SVA-NEC 등은 5세대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지만 삼성전자나 LG디스플레이 등이 6세대, 7세대 등으로 치고 나가면서 중국기업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국내 기업이 계속 8세대에 머무르는 사이 중국 기업들이 다시 LCD 투자를 감행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의 역할이 컸다. 중국 정부는 LCD 산업을 핵심 산업으로 지정하고 중국 기업에 지원을 아까지 않는 한편 수입 LCD 패널에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자국 LCD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나 LG디스플레이 등은 올해 초 중국 정부에 LCD 패널 공장을 짓겠다고 요청했지만 계속 승인 작업이 미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자국 기업들이 먼저 공장을 가동해 조금이라도 중국 판매 기반을 구축하려는 뜻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또 자국 기업뿐 아니라 우리나라, 대만, 일본 등 LCD 기업의 패널 공장을 유치함으로써 LCD 산업 저변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안현승 디스플레이서치코리아 지사장은 “중국 LCD 기업들이 어떻게 기술선을 확보하는지가 관건”이라며 “당분간 경험이나 기술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겠지만 대량 생산을 통해 추격속도를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한때 생산량 측면에서 우리 기업을 위협했던 대만 기업은 지난해 최악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소 힘이 떨어진 모습이다. 그러나 양안관계 회복과 최근 합의된 양안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바탕으로 부활의 날갯짓을 펴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바탕으로 그동안 고객 확보에서 밀렸던 국내 기업들을 따라잡겠다는 야심이다. 중국이 올해 초 구매사절단을 보내 53억달러 규모의 대만의 LCD 패널을 대거 구매하기로 하는 등 이른바 ‘차이완 효과’가 대만 기업에는 희소식이다. 그동안 LCD, 반도체 분야의 중국 진출을 꺼렸던 대만 정부도 최근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어 AUO나 CMI(치메이+이노룩스) 등의 중국 내 팹 투자도 현실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은 이미 중국 TV 기업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수요처를 확대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일본은 샤프 외에는 그다지 활발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 샤프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10세대를 가동했지만 수율 등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예전과 같은 기술 프런티어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샤프는 기존대로 국내 생산을 지속하면서 중국에 기술을 라이선스하는 사업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기업은 변화된 시장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하면서 지속적인 시장 우위를 점할 계획이다. 우선 중국 내에 LCD 팹을 차질 없이 추진해 중국 내수 기반을 다지는 한편 국내에서도 투자를 확대해 규모의 경제에서 앞서가겠다는 계획이다. LG디스플레이가 올해 5조5000억원, 삼성전자가 5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것은 그 같은 의지의 표현이다. 중국이 2개의 8세대 라인을 가동할 시점에 우리나라는 총 8개의 8세대 라인을 보유하게 된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8세대를 가동하면 초기에 수율개선에 어려움을 겪겠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안정될 것”이라며 “그러나 240㎐ 3D패널, LED 패널, 광시야각 등 고부가 가치 제품을 따라오는 데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자신감을 표현했다. 3D패널은 대만 기업도 기술력 부족으로 생산량을 확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과 대만 관계를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대만이 중국에 수출한 패널은 대수 기준으로 우리나라를 앞섰지만 금액상으로는 우리나라가 항상 앞서왔다. 고급 대형 패널판매 부문에서 대만기업에 크게 앞서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경제 분야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국가인 만큼 손해를 감수하면서 대만기업 제품을 구매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기업과의 관계도 대만 기업들 못지않다. LG디스플레이는 스카이워스, 캉자 등과 지분 참여 및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고 있으며 삼성전자 역시 TCL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관시(인맥) 측면에서도 전혀 뒤질 게 없다는 얘기다. 업체 한 관계자는 “중국의 부상은 우리나라 기업보다는 오히려 범용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대만 기업에 더 위협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며 “너무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관측했다. 안현승 지사장은 “중국의 부상은 우리 기업에는 위협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도 있다”며 “어떻게 변화에 맞춰 바꿔 가는지가 큰 숙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생산기술에서 차세대 라인을 어떻게 구축하고 차별화할 것인지는 과제로 남아 있다. 지난 4년간 국내 기업들이 8세대에 머물러 있는 동안 경쟁기업에는 추격의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