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와 발전자회사 통합이 사실상 물건너갔다. 판매 경쟁 도입으로 전화처럼 전기요금도 골라 쓰는 시대가 올 전망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9일 지식경제부의 전력산업구조 개편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결과는 논란이 돼 온 한전과 5개 화력발전자회사 통합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발전경쟁 유지와 한전의 판매부문 독립을 전제로 판매경쟁 도입을 제안했다.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 통합에 대해선 원전 수출역량 강화 측면에선 바람직하지만, 한수원의 경주 이전 문제가 걸려있는 만큼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입장만 내놓았다.
◇경쟁체제 강화 배경은=이번 연구용역은 2004년 배전분할 중단 이후 과도기적 상태를 지속해 온 전력산업 구조조정 문제를 일단락짓자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애초 전력산업은 2001년 발전사 분할을 시작으로 단계적 민영화 절차를 밟을 예정이었지만 사실상 답보상태를 계속했고, 현 정부 들어서는 아예 민영화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때문에 한전을 중심으로 ‘규모의 경제’를 위해 한전과 발전자회사를 재통합해야한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됐고, 구조개편과 관련한 논란이 재점화됐다.
KDI는 일단 발전경쟁 도입으로 연료구매비 절감, 건설단가 감축, 발전기 이용률 향상 등 효율 측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 통합론을 일축했다.
특히 한전측에서 통합의 주요 논리로 주장해 온 연료 통합구매의 효과와 관련해서도 개별구매의 장점이 훨씬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매 물량을 200만~300만t으로 높인다해도 공급자위주 시장인 유연탄의 특성상 대량구매를 통한 가격할인이 어렵고, 오히려 개별구매를 통한 위험분산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실제 분할 이전 한전도 100만t 이하 분산구매 정책을 폈다.
한 관계자는 “전기산업 발전을 위해선 과거로 되돌리기 보다는 경쟁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개편방안이 바람직하다”며 “자유화를 추진한 대부분 국가에서 판매경쟁까지 도입해 소비자 선택권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발전사 독립성 강화..가격경쟁 도입=용역안은 우선 발전 경쟁 유지를 전제로 화력발전 5개사의 독립을 제안했다. 방법으로는 한전의 유상감자나 한전과 발전사의 재합병 이후 인적 분할을 시행하는 방안과 발전사를 시장형 공기업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복수로 제시했다.
발전 5사가 시장형 공기업으로 지정되면, 현재 한전 사장이 수행하던 경영평가 기능이 기획재정부로 이관돼 사실상 한전으로부터 독립이 가능해진다.
또 전압별 요금체계 전환에 맞춰 산업.일반.교육용에 판매경쟁을 도입하는 방안도 제안됐다.
이 경우 화력발전 5사의 판매겸업이 허용되고, 한전의 판매부문은 독립공사로 전환하거나 자회사로 분리한 후 장기적으로 독립공사로 전환한다.
판매경쟁에 따른 요금상승을 막기 위해 기존 발전소는 정부와 가격 규제계약을 체결하고, 한전은 기본요금을, 신규사업자는 경쟁가격을 각각 제안해 소비자가 골라 쓸 수 있게 된다.
연구원은 “판매경쟁을 도입하기 위해선 종별 교차보조를 해소하고 전압별 요금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주택용의 경우 현행 누진율의 대폭 완화를 전개하기 때문에 도입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판매부문까지 완전히 분리된 한전은 전력거래소가 담당한 계통운영 기능을 흡수, 송전망과 계통운영을 포괄하는 전담기관의 역할을 맡게된다. 다만 한전과 발전사 분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전력거래소가 현행대로 계통운용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연구원은 지적했다.
또 전력.가스.열.1차에너지 등을 포괄하는 통합 에너지계획을 설립하기 위해 전문기관을 설립하고, 양수발전과 제주발전은 각각 한수원과 한전에 재통합된다.
◇한전-한수원 통합 및 발전사 규모=연구원은 전체적인 전력산업 체제와 관련해서는 비교적 명확한 대안을 제시한 반면 한전과 한수원 통합에 대해선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연구원은 “원전 수출역량 강화의 측면에서 통합은 바람직하다”며 “원자력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능이고, 화력발전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한전과 통합한다고 해서 경쟁체제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전과 한수원이 통합할 경우 방폐장 유치와 함께 경주에 약속한 한수원의 경주 이전 문제가 무산되는 만큼, 정부 신뢰성 훼손이 불가피한 게 사실이다.
연구원은 수출역량 강화에 따른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주의 반발이 제기되는 만큼 이 문제는 정치.정책적 차원에서 결론을 내릴 문제라고 지적했다.
통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원전 연구.개발(R&D) 체제를 일원화하고, 조정기능을 강화해 시너지를 최대화하는 방안을 복수로 제시했다. 발전사 통합 문제도 마찬가지다. 연구원은 현재 화력발전 5사 체제를 3사로 통합하면 해외 자원개발과 연료도입 등 측면에서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지만, 경쟁이 제한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5사 체제를 유지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며 우선순위 없이 통합과 현체제 유지 등 2개 대안을 함께 내놓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