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실리콘밸리 IT·BT 신기술 훑는다

세계 무대에서 뛰고 있는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연구개발(R&D) 전략이 달라지고 있다.

기술 혁신과 시장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가운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에 나서는 기업이 늘고 있다. `우리 연구소가 전부(Our lab is the world)`에서 `전 세계가 우리 연구소(The world is our lab)`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자리한 SISA(Samsung Information Systems America)는 미국 내 삼성전자 R&D센터다.

주로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미디어 솔루션, 저장장치(HDDㆍSDD) 등을 개발한다. 장재수 법인장은 아무리 바빠도 매주 목요일이면 실리콘밸리 지역 엔젤투자자 모임에 참석한다. 정보기술(IT), 바이오, 에너지 등 유망 분야에서 기술 심도가 깊어지고 각 기술 간 융합이 확산되면서 자체 역량과 외부 신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아보기 위해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투자와 연구 축이 IT 분야에서 바이오 에너지 메디컬 등 이머징 분야로 옮겨 가고 있다. 장 법인장은 "이곳에서는 애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처럼 개방과 협력을 통한 기술 혁신이 활발하다. 벤처캐피털 기업 학교 등과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데, 결국 휴먼 네트워크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인재 SISA 오픈이노베이션 팀장은 "스탠퍼드나 UC버클리에 가서 새로 짓는 건물이 무엇인지 보면 최근 기술 트렌드를 알 수 있다. 요즘은 바이오엔지니어링 같은 신규 융합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 새로 건물을 짓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는 삼성전자 계열사를 중심으로 독특한 그룹이 하나 만들어져 눈길을 끈다. 지난해 발족한 STSC(Samsung Technology Sourcing Collaboration)는 삼성전자 계열사 임직원이 신기술 정보를 공유하는 그룹이다. SISA 관계자뿐 아니라 삼성벤처 미국법인 임원, 삼성전자 구매담당자 등이 매달 정례 미팅을 열어 실리콘밸리에서 어느 기업 누구를 만났고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를 서로 나눈다. 또 새로운 기술을 확보했을 때 어느 파트에 접목하는 게 회사 전체적으로 가장 효과적일지 판단도 한다.

예컨대 카메라 관련 기술을 휴대전화에 먼저 적용할지, 디지털카메라에 더 적합한지 등을 논의하고 조정한다. STSC는 이 지역에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과 인재들이 삼성전자와 접촉하고 협력하는 주요 창구이기도 하다.

커뮤니케이션 랩이라는 새로운 교환연구원제도 역시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 중 하나. 삼성전자 일부 연구원은 현재 제록스 팰러앨토 연구소(PARC)에서 임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북쪽 트로이시에 자리 잡은 LG화학 콤팩트파워(CPI)는 전기자동차용 2차전지 연구개발과 시장개척을 담당하는 곳이다.

글로벌 협력을 전제로 출범한 덕분에 높은 성과를 올리고 있는 콤팩트파워는 2005년 콜로라도에서 디트로이트 지역으로 옮겼다. 이때 미국에서 처음 하이브리드 자동차 상용화를 주도한 현지 엔지니어 프랍하카 파틸을 CEO로 영입했다.

또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주요 자동차 기업 출신 연구원들을 활용해 미국 자동차 회사를 위한 전기자동차용 2차전지를 개발했다. 개발한 제품은 올해 GM에 납품할 예정이고 또 상용차 부품 분야 북미 1위 업체인 미국 이턴에 상용차용 배터리팩(셀뿐만 아니라 제어 시스템 등 다양한 부품으로 구성된 팩)을 공급한다. 본격적인 생산을 위해 미시간주 홀랜드시에 공장도 짓는다.

파틸 CEO는 "미국 주요 4개 내셔널 랩(ANL, INL, SNL, NREL)과 함께 연구하고, 특히 미국 주요 자동차 업체로 구성된 USABC(US Advanced Battery Consortiumㆍ미국 전기차 개발 컨소시엄) 프로젝트를 꾸준히 수행하면서 미국 자동차 업체에서 신뢰를 얻은 것이 2차전지를 납품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USABC는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3대 자동차 회사를 중심으로 전기자동차용 고성능 2차전지를 개발하기 위해 구성된 컨소시엄으로 차별된 기술을 보유한 업체에만 개발 과제를 주는데, 올해는 불과 4개 업체만 선정됐다. 콤팩트파워가 그중 하나다. 콤팩트파워는 7월부터 970만달러 규모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PHEV) 관련 프로젝트를 2년간 수행할 예정이며 개발 비용은 50대50 매칭펀드로 조달한다.

모하메드 알람기르 콤팩트파워 연구담당 디렉터는 "2차전지는 안정성이 중요하고 성능 테스트가 까다롭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많은 정보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또 미시간대, 콜로라도대와 함께 소재를 개발하고 주변 제조업체와 수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콤팩트파워의 큰 자산"이라고 덧붙였다.

콤팩트파워는 성공적인 글로벌 전략에 힘입어 2000년 10명도 채 안되던 연구소가 현재 120명이 넘는 R&D센터로 성장했다.

※공동기획 =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새너제이(캘리포니아) / 트로이(미시간) = 매일경제 심시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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