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지난 15세기까지는 철저히 유럽의 변방이었다. 3세기 초반부터 500년간 로마의 지배를 받다가 6세기 이후 게르만족의 남하로 300년간 게르만 영향 아래 놓였다. 8세기에는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무슬림에 의해 15세기까지 800년간 무슬림의 지배를 받게 된다. 무슬림에 대항했던 4개의 왕국의 통합과 무슬림 축출로 오늘의 스페인 모습을 갖춘 것은 15세기 말에야 가능했다.
통일 이후에도 스페인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번성에 따라 아랍과의 교역이 끊기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때 스페인은 타국으로부터 도움을 외면당한 이탈리아 탐험가 콜럼버스를 후원한다. 콜럼버스는 천신만고 끝에 신대륙을 발견하고 다시 스페인으로 건너왔다. 스페인은 콜롬버스에게 들은 정보와 항해술과 건조술을 바탕으로 대항해 시대를 개척한다. 스페인이 16세기와 17세기에 정복한 지역은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 멕시코, 미국의 남서부 지방부터 필리핀, 마리아나 제도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의 잔혹성 때문에 지금도 논란을 빚고 있지만 스페인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였다. 자국의 영토를 확장하고 자국 선단을 보호하기 위해 스페인이 만든 해군부대가 무적함대다. 무적함대는 경쟁 유럽국가나 식민지 국민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1588년 영국 해군에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패배할 때까지 100년간 세계 바다를 호령했다. 무적함대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스페인은 항상 우승후보군으로 꼽혔지만 지난 80년간 한번도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을 정도로 월드컵과는 연이 없었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광장을 가득 메우고 대형 스크린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연장전 후반 극적인 결승골이 터지자 온통 환호와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재정위기 위협 국가로 거론돼 세계 경제의 골칫거리로 부상한 스페인이지만 오늘만은 걱정을 잊고 우승의 기쁨을 즐길 것이다. 한 증권사는 “경제상황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스페인이 우승한다면 세계 경기회복이나 경기둔화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는 데 긍정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페인의 우승을 바랬던 것은 대표팀의 화려한 기술 못지않게 세계 경제회복에 대한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