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최근 우리나라가 2100년까지 평균 온도가 약 4도 상승하는 등 기후변화로 인해 약 800조원이 넘는 경제적 피해가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녹색성장을 주창하며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물론, 이와 더불어 필연적인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 이유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몸소 느끼기엔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자연은 너무 멀다. 요즘 들어 예년보다 더 더워진 것 같더니, 지난 겨울의 한파는 과연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긴 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만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기후변화 현상이 가장 뚜렷이 나타나는 지역 제주도를 찾았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구상나무 숲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한라산’,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점차 침수되고 있다는 ‘용머리 해안’, 그리고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해 아열대 작물인 망고를 재배하는 농가, 아열대 채소 및 과일을 개발해 농가에 보급하고 있는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센터까지.
기후변화 위기의 현장에서 오히려 이를 새로운 기회로 적응한 사례가 공존하는 제주도 속으로 들어가 본다.
◇한라산이 변하고 있다=제주도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해발고도에 따라 다양한 식생이 분포해 기후변화에 취약한 생물 종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한라산이다.
이날 동행한 제주대학교 송국만 연구원은 산행에 앞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대표적 한대성 수목인 구상나무 군락지 이동의 가장 큰 원인은 온난화 때문”이라며 “소나무 분포 지역의 확대는 구상나무 등 한대성 식물과 관목림의 개체 수 감소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고유 식물로 한라산에 가장 많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구상나무는 한라산의 기후변화를 알려주는 대표 수종이다. 실제로 한라산 어리목에서 윗세오름까지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을 약 2시간 넘게 오르다보니 들었던 대로 기후변화에 따른 식생의 변화가 확연히 보였다.
극지·고산 식물인 구상나무·시로미·돌매화나무·털진달랠한라솜다리의 분포 영역이 정상으로 계속 후퇴하며 줄어들고 있었다. 이를 야금야금 점령하며 올라가고 있는 것은 소나무·억새·제주조릿대 등 온대성 식물들이었다.
특히 과거에 주로 해발 1300m 부근에서 관찰됐던 구상나무 군락지는 최근들어 해발 1500~1700m로 높아졌다. 구상나무는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생육환경의 변화로 생장쇠퇴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위협근접종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해발 1500m 이상 지역에서만 자라는 멸종위기 고산식물인 시로미도 온난화로 생존 위협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반해 온대지역에서 주로 자라는 소나무는 점차 분포지역이 확대되고 있다. 소나무는 해발 900~1200m 지역에 분포하지만 최근 사제비 동산과 돈내코 등산로 등 해발 1400m 일대에서도 활발히 자라는 모습이 관찰된다.
송 연구원은 “소나무 분포 확대는 기존에 자생하고 있는 산철쭉 등 관목림과 구상나무 등 한대성 식물의 개체 수 감소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침수되고 있는 용머리 해안=한라산에 이어 들른 곳은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용머리 해안. 최근 용머리 해안 산책로를 통제하는 일이 잦아졌단다.
현원학 제주생태교육연구소장은 “1987년 산책로를 조성할 당시에는 거의 없었던 일인데, 최근 들어 해안이 바닷물에 잠긴다”며 “기본적으로 하루 평균 4시간 정도는 바닷물에 잠겨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없고 파도가 거센 날에는 아예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용머리해안 일주산책로는 해안의 비경을 관광객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산책로로, 1987년 자연 그대로의 바윗길에 너무 낮은 곳은 시멘트를 쌓아 높이고 위험한 곳은 돌계단을 놓거나 다리를 잇는 공사를 해 조성됐다.
그러나 산책로 조성에 관여했던 한 제주도 의원에 따르면 현재 해안선 평균 수위가 공사 당시보다 최소 15cm는 높아졌다고 한다.
제주대 해양과학대 방익찬 교수가 제출한 ‘기후변화 영향평가 및 적응모델 개발’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제주도 연안의 해수면은 지난 38년간(1970~2007년) 총 22.8cm 상승했다. 이 보고서는 제주지역 해수면이 상승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대만 난류가 흘러드는 동중국해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구로시오 해역이 우리나라 해수면 및 온도 상승에 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예상했으나 수심이 낮고 대만 난류가 흘러드는 동중국해 해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방 교수는 보고서에서 “제주도는 동중국해에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해수면 상승률이 가장 높다”면서 “이런 변화를 비교적 쉽게 눈으로 볼 수 있는 용머리해안을 기후변화의 상징적인 장소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망고 사러 제주로 옵서예=이번에는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있는 현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방문한 곳은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의 한 농가. 이 농가의 비닐하우스 안에는 다음 달 수확을 기다리며 불그스름한 빛을 더해가는 망고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20년 넘게 토마토 농사를 했던 이 농가는 5년 전부터 아열대 작물인 망고를 재배했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망고는 고온 살균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수입산 보다 맛이 좋고 신선해 개당 1만원 이상의 높은 가격에 팔린단다.
지난해까지 시행착오 등을 거치며 수익을 내지 못했고, 올해 사실상 첫 망고 농사로 수익을 기대한다는 이 농장의 강철준(55) 씨는 “날씨가 따뜻해져 제주도에서 아열대 작물 재배가 가능해졌고, 한반도 남쪽까지 재배지가 확대된 한라봉보다 더 많은 소득을 기대해 망고 농사를 시작했다”며 “본격적인 수익이 나기 시작할 올해부터 과거 토마토 농장을 운영했을 때보다 소득이 20~30%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가를 함께 방문한 전승종 온난화대응농업연구센터 연구관은 “제주도에서는 10년 전부터 망고 재배를 시작했지만 그때는 비닐하우스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가온 비용이 전체 사업비용의 70~80%를 차지해 수지를 맞출 수 없었다”며 “현재는 전체 비용 중 40~50% 정도로 낮아져 수익성이 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연구관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제주지역 열대과수 재배면적이 52ha(52만㎡)이르고 이 중 60%인 32헥타르가 망고, 10헥타르가 용과가 차지하고 있다.
전 연구관은 “감귤 2만ha, 한라봉 2000ha에 비해서는 아직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비한 수준이지만, 열대과수를 재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으며 열대과수 재배 농가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한편, 망고의 주요 서식지는 태국과 인도, 중국이다. 대표적인 아열대 작물인 망고는 평균온도 24~27도에서 자라는 작물로 북위 30도, 남위 30도 지역에서 자라야 정상이지만 현재 제주도와 일본 규슈 지방까지 재배지역이 확대됐다.
◇열대·아열대 작물 연구 한창=마지막으로 최근 열대·아열대 작물 연구가 한창인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센터에 방문했다. 농촌진흥청은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과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반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지구온난화현상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제주도에 2008년 센터를 설립했다.
문두경 농업연구사는 “2008년 기준을 제주지역 열대 과일나무 재배면적은 52.2헥타르로 지구온난화현상이 가장 먼저 나타난 제주도에 온난화 대응농업연구센터를 설립해 열대 및 아열대 작물을 농가에 보급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센터는 현재 열대·아열대 과수 8종과 채소류 5종을 들여와 현지 적응 농법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센터가 운영하는 수십 동의 하우스에는 열대·아열대 지역에서 들여온 다양한 과수와 채소가 시험 재배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용과와 인기 있는 차 재료인 패션프루트·망고스틴·아보카도 등 과일이 재배되는 중이다. 또한 제주도 온난화로 인해 지중해같이 따듯한 지역에서 자라는 아티초크는 하우스가 아닌 노지 재배가 가능할 정도다.
이 외에 아스파라거스·강황·쓴오이·차요테 등 전량 수입에 의존했거나 이름조차 생소한 열대·아열대 채소는 물론 아떼모야·아보카도 등 국내에서 자랄 것으로 상상하지 못했던 열대·아열대 과일도 농가에 보급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온난화대응농업연구센터는 지구온난화 지속을 기정사실화하고 미래 새로운 소득 작물 개발을 위해 다양한 열대과수를 놓고 적응 시험·평가를 진행 중이다.
이 날 제주도의 기후변화와 적응현장에 동행한 이재현 환경부 기후대기정책관은 “현재 나타나고 있거나 미래에 나타날 것으로 예측되는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정책관은 “현재 환경부를 중심으로 13개 부처가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 마련 작업을 시작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산업·에너지, 기후변화 감시·예측, 생태계, 산림, 농업, 해양 관련 대책 등 10개 분야 걸친 정부부처 협의 대책을 늦어도 8월까지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 정책관은 “국가 정책과 산업뿐 아니라 지자체 및 국민 생활의 적응 노력도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제주=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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