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초과학 연구가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런 연구가 결국 인류 삶의 질을 높이는 혁신의 계기가 됩니다.”
정현석 서울대학교 거시양자제어연구단장의 연구주제는 ‘미시세계의 양자물리학을 어떻게 거시세계에 적용하고 제어할 수 있는갗다. 미시세계란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느끼지 못하는 원자·광자·전자들의 계를 의미하고, 양자물리학이란 이러한 미시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태동된 개념으로 ‘빛 에너지의 최소단위 존재’에 기인한 ‘연속적이지 않은 물리량’을 설명하는 연구 주제다.
정 단장이 양자물리학의 세계로 들어선 것은 그가 말했듯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대학생 시절 수업시간에 들은 물리학 수식의 이면을 궁금해 하면서부터다. 그는 “수많은 수식 속에 파묻혔지만 대학 수업만으로는 그 이면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며 “양자물리학 분야의 유명한 석학들의 책을 탐독하기 시작했고, 그 세계에 점점 매료돼갔다”고 말했다.
특히 그를 사로잡은 것은 슈뢰딩거의 ‘죽은 고양이’ 이야기다. 슈뢰딩거는 ‘죽어 있는 상태와 살아 있는 상태가 동시에 중첩된 상태의 고양이’라는 거시세계의 양자 중첩 상태를 제안했다. 정 단장은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또 이를 어떻게 실제로 구현할 수 있을 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미시세계에선 이러한 양자 중첩 상태가 종종 구현되곤 한다. 전자나 광자와 같은 미시세계 구성 물질은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종종 낸다. 또 물리적 거리에 국한되지 않고 상호작용하기도 한다. 정 단장은 “고전물리학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물리 현상들이 미시세계에 있기 때문에 양자물리학 연구가 시작됐고, 이를 거시세계로 이끌어내면 또 한 번의 ‘정보혁신’이 가능해 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 단장은 2007년 거시세계의 양자물리학 구현 및 제어에 첫발을 내디디는 논문을 발표했다. 대규모 광자의 양자 중첩상태를 이론적으로 밝혀낸 것이다. 그는 “거시세계 양자제어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격려를 줬던 연구 성과”라고 말했다.
양자물리학 연구는 외국에선 더 활성화돼 있다.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컴퓨터가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들도 풀어내는 양자컴퓨터나 체계를 모르는 사람은 해독이 불가능한 양자암호 등 유용한 기술의 이론적 배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단장이 연구하는 건 이러한 상용화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는 “많은 학자들이 도전하고 있지만 양자컴퓨터가 상용화 단계에 이를지는 절대 장담 못하는 모험연구”라며 “설령 실패하더라도 과학기술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치게 될 성과들이 나올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정 단장은 앞으로 양자물리학을 거시세계에 적용하는 방법에 대한 통합적 연구와 양자물리학의 난제 규명을 통해 식물의 광합성과 같은 거시세계의 물리현상에 양자물리학을 적용할 계획이다. 또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통합계를 사용해 새로운 양자 정보처리에 대한 제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성공 가능성을 묻자 그는 “반반”이라고 답했다. 과감한 모험연구에 도전하는 학자다운 신중함과 열정이 동시에 묻어나왔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