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클로즈업]픽사이야기
한때 우리나라 재계에 ‘창조 경영’이란 말이 풍미한 적이 있었다. 수년 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새로운 경영 화두로 던지면서 화제를 불러 모았었다. 지금도 심심찮게 회자되는 창조 경영은 한마디로 ‘롤 모델’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미 삼성전자를 비롯해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는 만큼, 이제 해외 선진 기업들로부터 벤치마킹 사례를 찾는 일은 한계에 봉착했다는 얘기다. 기업 고유의 독자성과 차별성을 갖고 세계 최고를 향한 나만의 성장 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실체는 막연하기만 하다. 얼핏 생각만 해봐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야 하는 험난한 길이 훤히 보인다.
여기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창조 경영의 여정을 걸었던 기업이 있다. ‘토이 스토리’로 할리우드와 전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에 새로운 지평을 연 ‘픽사’다.
신간 ‘픽사이야기(PIXAR touch)’는 할리우드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자 애니메이션 시장의 절대 강자, 픽사가 왜 창조 산업의 산실로 여겨지는지 그 끝없는 도전과 성공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가 “현대 자본주의에서 거론되는 것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상품에 숨겨진 감정”이라고 했듯, 이제 기업은 전통적인 경쟁 방식을 초월한 새로운 경쟁력을 모색하고 있다. 그 해답이 바로 창조 산업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집단’이자 ‘애니메이션 영화계의 흥행 보증수표’라는 별칭을 달고 있는 픽사. 픽사를 주목하는 것은 이런 수식어 때문이 아니다. 단순히 영화라는 상품이 아니라 ‘재미’ ‘감동’ ‘꿈’을 보여주는 창조 산업의 선두 주자라는 점 때문이다.
지난 1986년 스티브 잡스가 루카스필름으로부터 500만달러에 픽사를 사들인 후 2006년 월트디즈니에 75억달러에 팔기까지 20년간 픽사가 무려 1500배나 성장한 비결, 그리고 환상적인 애니메이션으로 세계인을 매료시킬 수 있는 그들만의 창의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광원과 위치, 색상 등을 조절해 3차원(D) 컴퓨터 그래픽에 사실감을 불어넣는 픽사의 ‘렌더링’ 기술력은 물론 독보적이다. 하지만 픽사가 지닌 더 중요한 자산은 스토리다. 픽사 내부에서는 언제나 “첫째도 스토리, 둘째도 스토리”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픽사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 스토리를 구성하는 데만 평균 2년을 투자한다.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벅스 라이프’ ‘토이 스토리 2’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등 내놓는 작품마다 흥행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장기간에 걸친 스토리 창조 작업의 결실이었다.
저자는 에드 캣멀 회장을 포함해 세 인물에 주목한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물러난 뒤 픽사를 인수하며 제2의 인생을 걷기 시작한다.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지녔던 스티브 잡스는 픽사를 성공시키면서 애플로 복귀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픽사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스티브 잡스도 없었던 셈이다. 한 사람 더. 픽사에는 흥미롭게도 최고창조책임자(CCO)라는 직책이 있다. 존 래스터 CCO는 사내 창의팀을 이끌면서 두 차례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이력을 지녔다.
데이비드 A 프라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 흐름출판 펴냄. 2만3000원.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