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용기자의책다시보기]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사회보장정책을 펴서 국내 시장을 넓히는 방향을 생각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명백하고 시원했다. 사람이, 21세기 한국 시민이 어찌 살아가야 할지 해답이 담겼다. “해외에 의존하는 경제가 아니라 국내에 기반을 두는 단단한 경제를 만들어야 된다(222쪽)”는 것. “내수 중심의 경제를 한 번쯤은 해보라(54쪽)”는 “내수시장을 키우는 것은 사실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과 같다”는 절절한 안타까움까지!
명쾌하기에 힘이 넘쳤다. 2008년 11월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제대로 옮긴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깊은 통찰이다. 세계 경제를 꿰뚫어 보며 ‘새로운 사회’를 연구하는 김수행 교수가 제시하는 ‘한국경제의 희망과 나아갈 방향’은 굳게 믿고 의지할 만했다. “수학에 빠져 정작 중요한 문제에 관심조차 갖지 않는(168쪽)” 주류경제학자들과는 달라서다.
“이 친구들(주류경제학자)은 모든 것을 수식으로 증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모든 현상을 어떻게 수식으로, 숫자로만 나타냅니까. 말이 안 되죠. (중략) 주류경제학은 사상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굉장히 약해요(46쪽).”
지은이와 인터뷰어는 “숫자로 장난을 친다”고 보았다. 언론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인데, 빈민이 60~70%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1만달러를 버느냐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경제성장률을 따질 때 투자도 있고, 물가도 있고, 노동자도 있을 텐데, 이것을 몇 년도부터 해서 숫자를 다 넣어서 돌려 가지고 어느 것이 가장 상관관계가 있나, 이렇게 해서 주류경제학의 이론을 만든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가 빈민을 정치의 전면에 내세우듯 ‘숫자보다 사람’을 앞에 세우자는 얘기로 들렸다.
“주류경제학자들이 시장과 정부가 완전히 별개인 것처럼 얘기하고, 규제를 없애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처럼 얘기하니까 문제가 생긴다(132쪽)”는 지적도 시장주의가 실패한 뒤에 남긴 것을 추스를 때 필요한 요체다. 또 다국적 기업을 어떻게 규제할지(53쪽), 전철을 두 사람이 운전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69쪽), 시장에 전적으로 맡긴다는 개념이 실제로는 왜 안 되는지(85쪽)가 덮어두거나 가릴 것 없이 생생하게 제시됐다.
특히 21세기 국가의 역할(112~137쪽)에 주목하자. 그 안에 시장과 기업(재벌)을 어떻게 바라볼지 “모두가 행복”할 수 있게 어떻게 규제할지가 오롯하다.
“양극화 해소, 내수기반 확충, 경제의 안정적 성장, 인권유린과 증오의 해소, 사회적 타협의 확대로 나아가는 것이 유럽 선진국들이 걸어온 길이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1945년에 이미 사회보장제도를 확대·개선해 복지국가를 건설했는데, 한국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자살, 범죄, 인권유린이 판치는 야만상태에 있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지은이의 탄식이다. 탄식에 잇댄 인터뷰어 지승호의 말처럼 “한 번쯤 그렇게 시도해보는 것이 왜 이토록 어려울까. 도대체 얼마나 더 성장해야 분배를 하겠다는 것일까. (중략) 자, 이제 김수행 선생의 말에 귀 기울여보자(13쪽).”
김수행 지음. 시대의창 펴냄.
국제팀장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