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맹사성과 영포게이트

조선 최고의 명군 세종대왕의 업적은 영의정 황희와 좌의정과 우의정을 번갈아 지낸 맹사성이 있기에 가능했다. 맹사성은 벼슬을 내놓고는 고향인 충남 온양에 내려와 초야에 묻혀 살았다. 어느 날 신임 사또가 관아의 관리들을 데리고 맹사성을 찾았다. 마침 맹사성은 밭에 나가 김을 매고 있었다. 신임 사또가 옆에 와 있는데도 모르는 척 일만 하고 있었다. 난처한 신임 사또는 보다 못해 말에서 내려 옆에서 같이 김을 매기 시작했다. 그러니 같이 온 관리들도 따라할 수밖에. 한참이 지난 후 맹사성은 “오늘 하루 뙤약볕에서 일을 해보니 백성들의 삶이 어떤지 깨달았을 것이오. 아침 밥상을 대할 때마다 백성들의 땀방울을 기억하면 좋은 목민관이 될 것이오”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번 주는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들에겐 중요한 한 주가 될 전망이다. 오늘(19일) 부산시 공무원 응시 접수를 시작하고 오는 21일에 서울시 공무원 필기시험 합격자를 발표한다.

올해 국가 공무원 7급의 경쟁률은 모집인원 446명에 5만1452명이 지원해 115 대 1을 기록했다고 한다. 지난해 80 대 1보다 경쟁률이 더 치열해졌다. 응시연령 제한이 없어짐에 따라 고령 응시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9급 경쟁률 또한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다. 지난달 12일 시험을 치른 서울시 9급 공무원 시험은 143.7 대 1이었다. 저소득층과 장애인 전형을 제외한 광역시 경쟁률은 50 대 1 이하인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취업난이 갈수록 치열하다 보니 공무원 수험생의 학력파괴도 심화됐다. 지난 2006년 5월 경북 상주시 환경미화원 5명 공개채용에는 무려 142명이 응시했다. 전문대 이상 졸업자는 42명이었으며 박사학위 소지자도 두 명이 끼어 있어 화제가 됐다.

공무원이란 직업이 인기를 얻은 데엔 IMF가 큰 영향을 미쳤다. IMF 사태는 우리 사회 정년 개념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이른바 사오정이란 말을 낳았다. 자연히 정년을 보장하는 공무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심지어는 일반기업에 다니다 전직을 하는 사례도 생겨났다. 그러나 아직 공무원은 박봉에 잦은 전근으로 고된 직업임에 틀림없다. 한 공무원의 고백처럼 ‘사명감이 없으면 배겨내기 힘든 직업’이다.

요즘 정국은 이른바 ‘영포게이트’로 시끄럽다. 대통령과 같은 지역 출신 공무원들이 월권을 행사하면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다 각종 폐해가 속출한 사건이다. 잘나가는 공무원들이 모여 ‘이너서클’을 형성한 것이다.

지난 12일에는 웃지 못할 일이 부산에서 벌어졌다. 지난달 말 구 예산 5000만원이 투입돼 준공된 사상구 백양산 입구 정자 이름을 ‘덕진정(德辰亭)’으로 정했는데 얼마 전 퇴임한 윤덕진 사상구청장의 이름에서 따왔다니 그저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우리 사회 공무원은 직업 이전에 국민의 봉사자다. 그래서 다른 어느 직종보다 직업윤리를 강조한다. 지금도 학원과 도서관에서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 수험생들이 단순한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공무원이 되려고 한다면 본인이나 국가 모두에 불행한 일이다. 요즘 벌어진 일련의 공무원 관련 사건들을 보며 자진해 우의정에서 물러나며 달랑 피리 하나만 들고 낙향한 맹사성의 얘기를 되새겨 볼 일이다.

홍승모 전자담당sm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