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은 1990년대 중반 승승장구하면서 `아시아의 용`이라는 칭송 속에 대표적인 경제 우등생으로 통했다. 그러던 중 1997년 아시아를 휩쓴 외환위기 속에 한국이 직격탄을 맞았고 대만 등도 후폭풍에 시달리면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경제는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과거와 같은 활기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2008년 서구 선진국을 뒤흔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들 네 곳의 경제 성장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선진국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금융위기의 전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2007년 말만 해도 아시아 호랑이들이 제2 외환위기를 맞아 다시 몰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그렇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이런 우려가 기우였음을 보여주는 전망을 내놓았다.
IMF는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카지노 허용 등 서비스산업을 주력으로 내세운 싱가포르에 대해 올해 GDP가 무려 9.9%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로 떠오른 HTC를 배출한 대만은 7.7%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제조업 강국인 한국과 아시아의 금융허브 홍콩은 각각 5.7%와 6%의 성장을 전망했다.
특히 대만이 올 1분기 GDP가 8.2% 성장하고 싱가포르는 올 2분기 무려 19.3%나 늘어 중국을 웃도는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연간 성장률이 IMF 전망을 한참 웃돌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성장을 두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신속하고 강력한 경기 부양에 나선 중국의 주변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와 달리 내수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다. 유로존과 일본은 2009년 국내 수요가 3~4% 줄어든 뒤 올해 이후 1% 미만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은 올해 5%를 넘는 내수 증가가 전망된다.
기획재정부는 "기저효과를 고려하더라도 한국 등 아시아권 국가의 경기 회복은 두드러진다"면서 "내수 확대를 통한 성장과 고용유발이 큰 서비스 산업 육성 등의 효과"라고 설명했다.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이 전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 2.7%대로 줄었지만 내년에는 3%대를 회복해 점차 쪼그라들고 있는 구미 선진국과는 대조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지만 낙관만 하기에는 몇 가지 부족한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첫째는 중국에 대한 의존이 과도하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국(올 1분기 수출비중 26.2%)이고 대만, 홍콩, 싱가포르는 중화권 지역으로 중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하다.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면 성장이 제한될 수 있다.
내수 성장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통계상으로는 국내 수요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책에 따른 것이지 지속성에서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선진국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아시아의 과잉생산이 이어져 내수 위축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매일경제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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