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中企 쥐어짜기 더 심해졌다

충남 아산에서 10년째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협력업체 A사. 반도체ㆍ디스플레이 부품을 만드는 이 회사 재무담당 B임원은 지난 20일 기자를 만나자 한숨부터 쉬었다.

지난해 3분기까지는 그럭저럭 영업이익을 냈는데, 4분기부터 안 좋아지더니 올해는 아예 적자라는 것이다. 그는 "거래하는 대기업과 분기별로 납품단가를 협의하는데 매번 `내려라. 더 깎아라`는 명령만 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대기업은 갈수록 풍요로워지는데 중소기업 살림은 쪼그라드는 대-중소기업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대기업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고 있는데 협력업체인 중소기업들은 과실을 공유하지 못하고 소외당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K사장은 "대기업이 조 단위의 순익을 내면 그곳에 부품을 대는 중소기업도 주름살이 펴져야 하는데 살기가 더 어려워지는 건 뭔가 잘못됐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매일경제가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와 함께 21개 휴대폰 부품업체 상장사 실적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올 1분기 영업이익률은 -0.37%였다. 이익은커녕 적자를 낸 것이다. 이들 부품업체의 영업이익률은 작년 1분기 5.99%, 2분기 4.26%, 3분기 3.93%, 4분기 0.08%, 올해 1분기 -0.37%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정보통신 부문, 연결기준)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3분기 9.62%를 기점으로 지난해 4분기 10.32%, 올해 1분기 11.98%로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요즘 잘나가는 디스플레이 쪽도 마찬가지다. LG디스플레이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4분기 5.87%에서 올 1분기 13.43%로 급등했지만 같은 기간 이 분야 31개 상장 부품업체 영업이익률은 4.08%에서 3.35%로 오히려 떨어졌다. 이런 현상은 대기업이 납품단가 인하 등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는 반면 중소기업은 적자를 내면서도 납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은 2008년 수준을 회복했거나 뛰어넘었을지 몰라도 중소기업은 2008년에 훨씬 못 미치는 경영상태"라며 "파이는 대기업이 다 먹었다. 대기업이 얻는 실적과 성과가 중소 협력사로 전혀 파급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민화 기업호민관은 "현재의 양극화 구도는 중소기업의 혁신 의욕을 사라지게 하고 혁신에 필요한 우수 인재를 영입할 수 있는 수익 구조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며 "대기업들은 상생을 외치기 전에 먼저 공정거래 관행 확립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백순기 기자 / 노현 기자 / 이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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