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용기자의 책 다시 보기]아버지의 라디오

아버지의 라디오.
아버지의 라디오.

지난 18일 뉴질랜드 원주민 출신 변호사 졸렌 파투아와 투이라베씨가 항암치료를 마다한 채 아들을 낳은 뒤 세상을 떠나 세상 여러 부모의 심금을 울렸다. 투이라베는 마오리변호사협회 공동 회장을 맡아 환경과 마오리족 권익을 위해 투쟁한 변호사였기에 안타까움이 깊었다.

왜 그랬을까. 어떤 마음이었을까. 투이라베가 세상에 남긴 아들 루이는 엄마 마음을 언제쯤 얼마나 깊이 느낄 수 있을까.

2007년 8월 김진주씨가 엮어 내놓은 ‘아버지의 라디오’는 빛이 바랬으되 아이들과 함께 가슴에 품을 사진과 같다. “아버지는 비겁한 친일 협력자였고, 군사독재와 자본가의 하수인일 뿐”으로 생각했던 김씨가 옥살이를 하며 아버지를 가슴에 품게 된 사연이 담겼다.

김씨는 휴대폰 등에 열광하는 아버지의 손자들에게 “낡은 라디오가 놓여 있는 빛바랜 사진과도 같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이들과 함께 이 사진을 불빛에 비추어보면서 우리의 삶도 언젠가는 하나의 장면으로 남겨진다는 것, 그리고 뿌리로부터 힘을 길어 올릴 줄 아는 나무처럼 단단하게 새 시대를 꽃피우는 꿈에 대해서 서로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23~24쪽)”고 썼다.

김씨가 책으로 엮어낸 아버지의 육필은 한국 전자산업사(史)다. 일제강점기로부터 군사정부에 이어진 안타까운 ‘빨리빨리 야사(野史)’라고도 하겠다. 1950년 말 이승만 전용 피켓보트를 타고 부산과 진해를 오가며 원자력 개발계획에 일조했고(127쪽), 국산 1호 라디오 ‘금성 A-501’을 설계·제작한 것은 물론이고 금성사 왕관 모양 샛별 표식과 로고(골드스타)까지 창안한(146쪽) 과정이 그랬다. ‘빨리빨리’의 절정으로는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에 성공한 박정희 소장이 부산 연지동 금성사를 방문해 생산중단위기에 처한 ‘금성 A-501’를 위해 “김(해수) 과장, 기운을 내시오. 아마 곧 좋은 일이 있을 것이오(162쪽)”라고 말한 것. 일주일 뒤 라디오를 포함한 ‘밀수품 근절에 관한 국가재건최고회의 포고령’이 발표됐고, 정부 기관이었던 공보부가 ‘전국 농어촌에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금성사 라디오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김진주씨는 아버지가 설계·제작한 국산 1호 라디오 진품을 찾아 나섰으나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다”고 했다. ‘빨리빨리’ 발전해야했기에 기록(1호)이 무시됐던 탓이다. 그는 “LG그룹조차 모조품을 전시한 형편인 것을 보면 우리 아버지의 시대가 얼마나 바쁘게 앞길만 응시하며 달려왔는지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고 풀어냈다. 김씨는 결국 진품 사진을 찍는 데 만족해야 했다.

지은이 김해수의 발자취 가운데 일부는 기자에게도 익숙하다. 그가 1974년 싸니전기 전무를 맡은 뒤 7년 동안 만든 8개 한·일 합작기업 가운데 경인전자와 한국음향과 대한노블전자를 1995년에 출입했다. 그가 금성사 원자재와 부품을 발주·결재하는 책임자였을 때 거래한 로켓트전지도 같은 해 출입했다.

지은이의 기록으로부터 느끼고 꺼낼 게 많았다. 참, 엮은이 김진주씨의 남편은 시인 박노해다. 시집 ‘노동의 새벽’을 쓴!

김해수 지음. 김진주 엮음. 느린걸음 펴냄.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아버지의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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