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조찬포럼에서 있었던 일이다. 두 명의 주제발표가 끝나고 참여자 간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이뤄지고 있을 때 두 세 명의 입에서 동시에 같은 말이 나왔다. ‘죽어야 산다’였다. 무슨 영화 제목 같기도 한 이 말이 이구동성으로 나온 건 ‘도시 광산’ 사업 때문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생소하게 들리던 도시 광산이란 말이 요즘은 일상화됐다. 도시 광산은 산업폐기물이나 버려지는 폐휴대폰·폐가전 등에서 산업에 필요한 금속을 분리해 산업 원료로 다시 쓰는 산업이다. 실제로 금광석 1톤을 정련해서 얻을 수 있는 금의 양은 5g남짓이지만 폐휴대폰 1톤을 분해해서 정련하면 금 400g에 은 3㎏, 구리 100㎏, 주석 13㎏, 니켈 16㎏, 리튬 5㎏을 얻을 수 있다. 부존자원이 없고 IT가 발달한 우리나라 입장에서 막대한 개발비용 없이 산업에 필요한 희소금속을 주위에서 얻을 수 있는 도시 광산은 더 말할 나위 없는 사업이다. 도시 광산 개발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기업들이 적극 나서는 이유다. 작년 7월에는 범정부 차원에서 개발 프로그램뿐 아니라 육성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포럼에 참석한 시민단체는 오래전부터 전자쓰레기 제로화를 위해 폐건전지를 비롯해 폐휴대폰·소형가전 등을 수거하는 사업을 해왔다. 사실 폐건전지 1톤을 모아 재활용하면 5만원 정도가 남는데 폐건전지를 운반하는 차량 비용이 더 들 정도다. 그나마 폐휴대폰은 유가금속이 있어서 좀 낫다. 몇 년 전만 해도 폐휴대폰 한 개를 재활용하면 1500~3000원 정도의 수익이 떨어졌다. 이 단체는 전자쓰레기 제로화 운동을 위해 몸으로 뛰며 400회가 넘는 교육을 했고, 정기적으로 행사를 통해 지구환경을 살리자는 취지를 대중에 알려왔다.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큰 흐름을 타고 도시 광산의 경제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면서 본래의 취지와 다른 현상이 나타났다. 정부가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폐휴대폰 회수 프로그램이 인사평가의 한 요소가 됐고 팀이나 개인의 성과로 연결됐다. 학교를 통해 학생들을 상대로 실천서약을 받기도 했고, 심지어는 공문을 통해 ‘모 단체는 정부가 인정하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참여하지 말라’며 특정 단체를 배제하기도 했다. 이쯤 되자 포럼 참석자 사이에서 ‘(시민단체가) 죽어야 산다’는 말이 이구동성으로 나왔다.
다행히 행정안전부에 입장정리를 요청해 문제를 풀어가는 상황이라고 하지만, 좋은 취지의 사업이 성과를 내기 위한 과열경쟁으로 치달으면서 애먼 단체를 잡을 뻔했다. 도시 광산이 알려지지 않고 척박한 시절에는 아무도 거들떠보려하지도 않다가 시장이 어느 정도 시스템화되자 정부가 나서 온갖 리소스를 동원해 기존 사업자를 옥죄려 한다는 시민단체의 푸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해, 버려지는 전자쓰레기를 재활용하고 재가공해서 자원화하자는 좋은 취지가 헛되지 않으려면 성과 지상주의를 벗어던져야 한다. 비단 도시 광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주도의 확산 프로그램은 한계가 있다. 민간과 힘을 합쳐 확산해야 한다. 민간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네트워킹하고 적절한 시스템을 만들었을 때 저탄소 녹색성장은 비로소 국민생활 깊숙이 스며들 수 있다.
주문정 그린데일리 부장 mjjoo@etnews.co.kr